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년간 피임제 사용실태·부작용·인식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피임제 분류를 현행(사전피임제는 일반의약품, 응급피임제는 전문의약품)대로 유지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결정은 △ 응급 피임제의 오남용 우려 상존 △ 피임제 관련 인식 부족 △ 중대한 피임제 부작용 보고 감소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후피임법으로도 불리는 응급피임법은 무방비 상태(unprotected)에서 또는 잘못된 피임법(inadequately protected)으로 성관계를 한 후 임신을 막는 데 사용된다. 최근 식약처가 이 응급피임약과 관련해 현행대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ETC)으로 유지하도록 결정했는데, 약제의 오남용 위험과 응급피임법에 대한 낮은 인지도를 고려한 결과다.

응급피임제의 사용에 지속적으로 의사의 처방이 요구되는 이유는 일반의약품(OTC)으로 적용될 경우 일반인들이 약제의 용법·유효성·안전성 정보에 무지한 상태에서 전문적 조언 없이 오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응급피임법의 임상적용은 어떤 약제를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사의 전문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일반인들의 응급피임법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 낮다는 점도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여성 및 청소년(여성) 등을 대상으로 사전 및 응급피임제 사용방법, 기간 및 부작용 등 피임제 사용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여성은 사전피임제의 경우 33%, 응급피임약은 44%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여성)에서 응급피임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36% 수준으로 조사돼 피임제 안전사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유로 응급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남게 됨에 따라, 임상적용의 유효성과 안전성 근거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지난해 말 새롭게 업데이트된 응급피임법 가이드라인을 발표, 유효성과 안전성에 근거한 응급피임법의 적용을 주문했다.

ACOG는 “다수의 여성이 응급피임법의 존재를 모르거나 사용 및 안전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또는 실제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 “응급피임법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근거를 살펴보고, 산부인과 전문의 및 기타 부인과 처치를 하는 의료인의 응급피임법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는 것이 새 가이드라인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의 주된 내용은 우선 “응급피임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방비 혹은 잘못된 피임법을 사용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진 후 가능한 신속하게 긴급 피임법 치료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응급피임 목적의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ulipristal acetate) 제제의 사용이 처음으로 언급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와 기존 제제의 작용기전 및 효과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추가됐다. 작용기전과 관련해서는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제제와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만 함유된 제제가 배란을 억제 또는 지연시키는 것으로 입증됐는데,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제제는 레보노르게스트렐과 달리 황체형성호르몬(Luteinizing hormone, LH) 농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배란을 억제한다는 설명이다. 가이드라인은 응급피임법 약물의 효과와 관련해서도 “레보노르게스트렐만 함유된 제제에 비해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제제가 더 효과적이며 최대 5일까지 약효가 지속된다”고 밝혔다.

응급피임법
가이드라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적용 가능한 응급피임법에는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결합 경구제(oral administration of combined estrogen-progestin), 프로게스틴 경구제(progestin-only pill), 선택적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조절제(selective progesteron receptor modulators), 자궁내 피임장치(intrauterine device, IUD)가 있다. 1998년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처음으로 응급피임 전용제품의 사용이 승인된 이래로 현단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응급피임법이다.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
경구 응급피임제로 프로게스틴 성분 정제인 레보노르게스트렐 1회 1.5mg 요법은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고, 미국에서는 2013년부터 연령제한 없이 사용되고 있다. 다만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는 무방비 상태의 성관계 후 최대 7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라벨에 명기돼 있지만, 무방비 상태의 성관계 후 가능한 빠르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다른 응급피임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짧은 적용기간을 언급했다.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ulipristal acetate)
엘라원(EllaOne)으로 불리는 선택적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조절제로,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성분 30mg 함유 제품은 이번 업데이트판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ACOG는 “2010년 FDA 승인된 가운데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으며, 무방비 상태의 성관계 후 최대 120시간까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 약제는 황체형성 호르몬 증가 후에도 배란을 지연·억제시키는 기전으로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보다 효과가 우수하고 최대 5일까지 약효가 지속되는 것으로 언급돼 있다.

자궁내 피임장치 - copper IUD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결합 제제는 더 이상 응급피임 전용제품으로 판매되지 않으며, IUD는 FDA 승인 적응증은 없지만 응급피임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IUD는 성관계 5일 이내로만 삽입되면 피임효과가 높고, 일부 연구에서는 성교 10일 후에도 사용됐다”고 언급했다.

작용기전
가이드라인은 응급피임법의 작용기전과 관련해 단일한 메커니즘은 밝혀진 바 없으며 월경주기상 성관계가 이뤄진 날, 응급피임법 적용 시기, 사용된 응급피임법의 유형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기전과 관련해서는 대표적인 두 응급피임 약제인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와 레보노르게스트렐 모두 배란을 억제 또는 지연시키는 것이 입증됐다.

다만 가이드라인은 “레보노르게스트렐은 황체형성 호르몬 수치가 증가하기 전에 투여되면 난포발달을 지연시키는 데 반해,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는 황체형성 호르몬 수치가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라도 배란을 저해한다”며 선택적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조절제의 적용기간이 더 길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피임효과
응급피임법의 효과는 임신예방률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두 경구용 응급피임 제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연구를 통해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보다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의 효과가 우수하며, 최대 5일까지 약효가 지속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관련 근거를 내놓았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근거에 따르면, 유효성 비교에 관한 임상연구들의 메타분석에서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사용자의 임신율이 1.4%로 레보노르게스트렐 사용자(2.2%)에 비해 낮았다. 3상 임상연구에서는 울리프리스탈 아세테이트 사용자의 전체 임신율이 1.9%였다.

반면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를 사용한 여성 총 8000명 이상이 포함된 6개 연구에서 계산한 피임률은 60~94% 범위였다. ACOG는 이상의 응급피임법 작용기전과 피임효과에 근거해 주요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상돈 기자  sdlee@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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