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해서는 안 되는 감염성 질환
바이러스의 맹위가 끊이지 않는 시대다. 2015년을 뒤흔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는 2016년에도 여파를 미쳤다. 올겨울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엔자인 A형 H3N2는 높은 전파력과 치사율을 보이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외에도 2016년 구제역, 그에 이은 조류인플루엔자 H5N6형의 유래없는 유행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대는 아니지만, 감염성 질환이 유행을 시작했을 때 사회·의료적으로 경직되고 당황하는 분위기는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질병부담률 측면에서 감염성 질환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 10대 사인 중 상위에 허혈성 심질환, 뇌졸중,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하기도감염, 폐암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 2014년 사망원인통계에서도 암, 심장질환 등 순환기질환, 호흡기질환이 주요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학 관련 전문가들은 감염성 질환 관리의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페스트는 없지만 여전히 치명적인 감염성 질환들은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WHO 10대 사인에서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설사성 질환이 폐암에 이어 공동 6위로 집계됐고, 국내 사망원인 통계에서도 감염성 원인을 포함한 소화기계통의 질환이 뇌혈관질환, 폐암에 이어 주요 사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심뇌혈관질환, 암 등 만성질환의 그늘에서 세를 키워온 것이다. 관련 학계는 감염성 질환의 증가추세에 맞춰 치료전략들을 가다듬어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치료전략에 대한 임상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제 임상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들도 다수 업데이트 됐다. 속수무책이 아닌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C형간염 새로운 치료전략 경쟁 치열
간염(Hepatitis)은 세계적으로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대표적인 소화기 감염성 질환으로 꼽힌다. 바이러스로 발생하는 간염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합병증이 발생하고 나아가서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간염은 만성화 경향을 보이는 만큼 적극적인 예방 및 치료가 강조돼 왔다.

국내외 학계에서 다뤄지는 주요 간염은 만성 B·C형이다. C형간염의 경우 직접항바이러스작용제(DAA)가 등장한 이후 새로운 치료약물들이 부각됐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유럽간학회(EASL) 가이드라인은 치열한  C형간염 치료전략 분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이드라인에서는 빠른 시점의 C형간염 바이러스 평가를 주문했고 이후 유전자형에 따라 알맞은 치료전략 적용을 대전제로 제시했다.

치료약물 부분에서는 소포스부비르가 임상시험 및 리얼월드에 효과적인 DAA로 확인된 점을 들어 소포스부비르 기반요법을 다수 제시했다. 소포스부비르/레디파스비르, 소포스부비르/벨파타스비르 복합제와 함께 소포스부비르 + 다클라타스비르, 소포스부비르 + 시메프레비르 병용요법 등 소포스부비르 기반요법은 C형간염 유전자형 1~6형에 각각 선택적으로 권고됐다.

여기에 옴비타스비르/파리타프레비르/리토나비르 기반전략, 엘바스비르/그라조프레비르 등 새로운 DAA 복합제들도 미국·유럽에서 잇따라 승인돼 가이드라인에 추가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약물은 C형간염 유전자형 1·4형에 적용된다. 한편 EASL 가이드라인에서 페그인터페론 요법이 C형간염 치료전략에 포함되지 못한 부분 역시 DAA 치료전략의 비중을 대변해준다.

B형간염 치료전략
B형간염은 국내에서 오랜기간 높은 유병률을 보여왔다. 새로운 치료전략의 등장으로 분주한 C형간염과 다르게 B형간염 관리전략은 테노포비르, 엔테카비르에 중지가 모여 있다. 대한간학회(KASL)와 미국간학회(AASLD) 모두 가이드라인을 통해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효과와 유전자장벽이 비교적 높다는 점을 기반으로 두 약물을 권고하고 있다.

B형간염의 과제는 내성관리다. 국내의 경우 라미부딘, 아데포비르 등의 사용병력 환자가 많아 두 약물에 대한 내성, 나아가서는 다약제 내성이 많은 상황이다. KASL과 AASLD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두 약물이 라미부딘, 아데포비르 치료경험 환자에서도 유효한 바이러스 억제효과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AASLD 연례학술대회에서는 두 약물의 임상적 유효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들이 발표됐다. 테노포비르의 경우 라미부딘 + 아데포비르 병용요법으로 치료받은 환자에서 단독요법으로도 비열등한 치료효과를 보였고, rt204I/V 내성변이가 있는 환자에서도 단독요법의 유의한 효과를 입증했다. 엔테카비르는 일본인 B형간염 초치료 환자에서 테노포비르와 비열등한 효과와 함께 신장 관련 아웃컴에서도 유의한 혜택을 입증했다.

HIV, 빠른 치료 강조
불치병이라는 타이틀이 지워져가는 HIV 관리전략도 강화됐다.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ART)의 폭넓은 적용을 통해 세계적으로 새로운 감염자수와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WHO는 “HIV로 인한 사망률은 여전히 높고, 2030년 종식을 위해서는 한 발 앞선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도 이 부분에 공감했다. WHO와 미국질병관리예방센터(CDC), 유럽에이즈임상학회(EACS)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최대한 ‘빠른 시점’의 ‘광범위한’ ART 적용을 대전제로 제시했다. HIV로 진단된 성인의 경우 임상적 단계, CD4 세포수에 무관하게 치료를 시작하고 임신부, 모유수유 여성도 예외 없이 포함된다. 소아·청소년에서도 세부적인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가능한 빠른 시점’의 투여를 권고했다.

치료전략의 기본적인 틀을 2종류의 뉴클레오시드역전사효소 억제제(NRTI) 기반에 비뉴클레오시드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나 인테그라제 억제제(INSTI), 프로테아제 억제제(PI)를 추가한 3제 병용요법으로 제시한 점은 공통된 부분이다.

단 미국과 유럽 가이드라인에서는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레이트(TDF)와 함께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마이드(TAF)를 대체 가능한 전략으로 제시했다. 비용적인 부분에서 저중소득국에서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있지만, 치료적인 부분에서는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있다는 것이다. CDC는 “TDF 대비 TAF가 10분의 1 용량으로도 등등한 효과를 보였고, 신장기능 및 골밀도에 대한 악영향은 줄였다”고 혜택을 설명했다.

한편 노출 전 예방요법(PrEP)도 HIV 예방전략으로 권고되고 있다. 이는 HIV 감염 고위험군이 바이러스 접촉 전에 ART를 투여해 감염을 예방하는 것으로 TDF 단독 또는 엠트리시타빈(FTC) 병용요법을 적용한다. 이 전략은 iPrEx, Partners PrEP 등 주요 임상시험에서 유의한 혜택을 입증했다.

진균질환, 적절한 치료요법
바이러스 원인 질환과 별도로 진균질환 역시 이환율 및 유병률이 증가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꼽힌다. 진균질환 환자는 해외여행 및 야외활동 증가 등 사회환경의 변화와 노인인구·면역저하 환자 증가 등 인구학적 변화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진균질환은 일상 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대부분 중증도도 높지 않다. 경증 진균성 피부질환은 발진, 폐 진균 감염의 경우 인플루엔자나 결핵 유사 증상에 그친다. 하지만 일부 진균은 치명적인 예후를 보이고 진균성 뇌수막염, 혈류감염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국내외 역학연구에서 치명적인 진균질환은 칸디다증과 아스페르길루스증이다. 특히 아스페루길루스증의 경우 고령인구에서 더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대한감염학회·화학요법학회 2016년 추계학술대회에서 관련 강의를 진행한 동아의대 정동식 교수(동아대병원 감염내과)는 조기평가를 통한 적절한 치료를 강조했다. 큰 틀에서 예방적 투여, 경험적 치료(empirical treatment), 진단 기반치료로 구분되고 있는 가운데 고위험군 및 증상의심 환자 파악을 통한 예방적 투여 및 경험적 치료의 적극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예방적 투여는 물론 경험적 치료도 국내 보험급여 체계가 정비돼 있다”며 “호중구감소증이 지속되는 환자에게 암포테리신 B 제제를 비롯한 다양한 약물을 통한 적극적인 경험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미국감염학회(IDSA)도 2016년 칸디다증, 아스페르길루스증 가이드라인을 통해 근거에 기반한 약물별 권고사항을 정리하는 한편 의심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약물요법을 권고했다.

환경변화 흐름 타고 소화기기능성운동질환 증가
한편 감염성 질환은 아니지만 진균질환과 같은 유사한 배경으로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소화기기능성운동질환에도 관심이 높다. 대표적인 소화기기능성운동질환인 위식도역류질환(GERD)과 과민성장증후군(IBS)은 식생활습관, 연령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두 질환 모두 서양에서 호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식생활습관의 서구화와 고령화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질환들이 복잡한 임상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GERD의 경우 프로톤펌프억제제(PPI) 등장 후 치료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지만, 최근에는 PPI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GERD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IBS 역시 유병률은 서양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임상적 페노타입에는 차이를 보인다. 이런 임상병태를 고려해 새로운 치료타깃들이 관심을 받았고, 최근에는 장내세균총의 균형을 유지해 치료하는 항생제 요법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임세형 기자  shlim@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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