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이 직면한 최대의 난제 중 하나가 바로 혈전이다.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져 만들어진 이 조그마한 핏덩이는 혈류를 저해하는 동시에, 몸속을 돌아다니다 혈관을 막아 색전증을 야기하고 결국은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심각한 장애 또는 사망을 유발한다.

심혈관질환 최후방 수비진
고혈압·고혈당·이상지질혈증·비만 등의 위험인자가 심혈관질환 이환 또는 이로 인한 사망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방아쇠 격이라면, 혈전은 사망이나 장애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총알에 비유할 수 있다. 앞선 위험인자들에 의해 혈관내 죽상동맥경화증이 발생하거나 악화된다. 위험수위에 다다른 불안정형 죽상경화반은 그 자체만으로도 혈전생성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파열로 인해 혈전이 발생하면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증 또는 허혈성 뇌졸중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혈압·지질·혈당·체중조절 등이 심혈관질환 예방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혈전은 최종적인 타깃이라고 할 수 있다.

심혈관질환 예방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본질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혈압·혈당·지질·체중의 관리를 통해 죽상동맥경화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상동맥경화증을 차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하더라도, 혈전을 다스리는 전략을 통해 궁극적인 심혈관사건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항혈전치료를 통해 심혈관질환을 막기 위한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항혈전치료 요구 확대
최근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고혈당 등이 급증하면서 죽상동맥경화증이 다발하고 취약성 경화반에 의한 혈전, 색전증의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항혈전치료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말초동맥질환, 심방세동, 정맥혈전색전증 등도 혈전을 통해 급성 심·뇌혈관질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동맥경화증, 경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정맥혈전색전증(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심방세동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항혈전치료가 요구되고 있다.

항혈전치료 다변화
이렇게 전선이 광범위하고 혈전사건의 특성이 다변화하다 보니, 이에 대적하는 항혈전치료 역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현단계에서 선택 가능한 항혈전치료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섬유소용해제를 통해 혈전 자체를 녹이는 치료로, 급성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에 사용된다. 다음은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초기·단기 및 장기적인 치료다.
여기에는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항응고제 요법은 상대적으로 혈류가 느린 심방(심방세동, 심인성 뇌졸중)이나 정맥(정맥혈전색전증) 쪽에,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항혈소판제는 빠른 혈류의 동맥(관상동맥질환, 비심인성 뇌졸중, 경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쪽에서 기여도가 크다.

아시아 뇌졸중 특성
최근에는 뇌졸중 2차예방의 핵심전략인 항혈소판요법과 관련해 인종과 지역에 따른 유병특성에 근거해 맞춤·차별화 치료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인의 뇌졸중 유병특성이 서양과 엄연히 다른 데다 다양한 기전의 항혈소판요법이 존재하는 만큼, 각각의 특성에 부합하는 독특한 기전(유효성·안전성)의 항혈소판제가 선택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인 뇌졸중 환자의 차이점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두개내혈관 죽상동맥경화증(intracranial atherosclerosis)에 의한 뇌졸중·소혈관질환(small vessel disease, SVD) 특성의 뇌졸중·출혈성(intracranial hemorrhage) 병태생리의 뇌졸중이 서양에 비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병태의 뇌졸중 환자에서는 항혈전치료 시 뇌출혈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저출혈 위험의 특성화된 항혈소판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PDE3 억제제
울산의대 김종성 교수(서울아산병원 신경과)는 International Journal of Stroke 2011;6:209-210에 게재된 ‘실로스타졸: 아시아인에 효과적인 약물?’ 제목의 기고문에서 “아시아인의 경우 혈관 병태생리학 측면에서 두개내 죽상동맥경화증의 비중이 높다”고 밝혔다. 뇌졸중과 관련해 서양인에 비해 SVD 빈도가 높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유병특성을 고려할 때, 아시아인에게는 차별화된 항혈소판제 전략이 요구된다”며 이에 적합한 선택으로 실로스타졸의 유용성을 내세웠다. 우선 “SVD의 경우 고혈압에 의한 혈관내피세포기능의 악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실로스타졸과 같이 혈관내피세포기능 안정화 효과를 갖춘 항혈소판제의 혜택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두개내 죽상동맥경화증과 관련해서는 “실로스타졸 병용치료가 아스피린 단독과 비교해 두개내 동맥협착의 진행을 유의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보고됐는데, 이 같은 혜택은 혈관내피세포기능 안정화 또는 혈관 평활근세포 활성화 억제 등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이들 환자에서 출혈위험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변수 중 하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실로스타졸은 CSPS2 연구 등에서 아스피린과 비교해 출혈위험이 낮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출혈사건 고위험군인 뇌졸중 환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한다.

김 교수는 Journal of Stroke 2015;17:111-122에 실린 보고서(Prevention and Management of Cerebral Small Vessel Disease)에서도 앞서 제기한 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SVD 환자에서 혈전치료 후 출혈위험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중항혈소판요법(아스피린 + 클로피도그렐)은 피하는 것이 좋고, 아스피린 대비 출혈위험이 낮은 것으로 입증된 실로스타졸 또는 트리플루잘 같은 항혈소판제의 선택이 위험 대비 혜택이 클 수도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렇다면 뇌졸중 유병특성에 따른 항혈소판요법의 차별화·맞춤전략은 실제 임상현장에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을까? 우리나라 뇌졸중 예방 가이드라인을 들여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가이드라인과 비교해 항혈소판요법 권고안에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뇌졸중 2차예방을 위한 항혈전치료 전략에서 미국·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지침은 항혈소판제 단독요법의 1차선택으로 실로스타졸을 여타 약제와 함께 권고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실로스타졸이 SVD에 속하는 열공성 뇌경색 환자, 그리고 뇌출혈을 포함한 심각한 출혈위험이 있는 환자의 뇌졸중 2차예방에 1차 단독요법으로 권고됐다는 것이다. SVD 환자에게 적합한 혈관내피세포기능 안정화 효과와 낮은 출혈위험 등이 고려된 결정이다.

아스피린
심혈관사건 예방을 위한 항혈전치료를 논할 때 아스피린을 빼놓을 수 없다. 광범위한 심혈관질환 환자들에게 권고되는 대표적인 항혈소판요법으로 안정형허혈뇌졸중(SIHD),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말초동맥질환(PAD), 뇌졸중, 일과성뇌허혈발작(TIA), 당뇨병 등 다양한 질환군에서 심혈관질환 1·2차예방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할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아스피린은 국내외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고혈당·고혈압·이상지질혈증 치료와 함께 심혈관질환 예방전략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심장학회(ACC)·심장협회(AHA) 안정형허혈심장질환 가이드라인, 유럽심장학회(ESC) 심혈관질환 예방 가이드라인, ACC·AHA 말초동맥질환 가이드라인, ACC·AHA 급성관상동맥증후군 가이드라인, AHA·뇌졸중협회(ASA) 뇌졸중 1·2차예방 가이드라인, 미국당뇨병학회(ADA) 당뇨병 가이드라인 등이 아스피린을 항혈소판요법의 1차선택으로 내세우고 있다.

P2Y12 억제제
아스피린이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항혈소판요법의 대명사라면 티에노피리딘계 클로피도그렐은 고유명사 격이다. 혈소판 활성의 핵심 루트이자 기여인자인 P2Y1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기전으로, 진정한 의미의 또는 순수 혈통의 항혈소판제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클로피도그렐은 심·뇌혈관질환 예방전략의 1차선택인 동시에 유효성과 안전성에 있어 여타 항혈소판제와 대비되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P2Y12 억제기전의 특성을 보면, 태생적으로 항혈소판 효과와 출혈 안전성에 있어 클로피도그렐이 위험 대비 혜택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극적인 임상혜택, 즉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는 이미 여러 임상·관찰연구를 통해 수차례 보고돼 왔다. CAPRIE, MATCH, PRoFESS, CHARISMA, WOEST 등 임상연구와 다양한 관찰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클로피도그렐 단독요법의 임상혜택을 읽어낼 수 있다. 강력한 항혈소판효과와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출혈위험이 클로피도그렐의 1차선택을 담보하고 있다.

아스피린에 이어 클로피도그렐이 표준으로 자리하고 있던 ACS 분야에는 P2Y12 억제제 계열의 새로운 항혈소판제들이 등장하면서 또 다른 선택을 제공하고 있다. 신규 P2Y12 억제제는 티카그렐러와 프라수그렐을 지칭하는데, PLATO와 TRITON-TIMI 38 연구에서 입증된 강력한 항혈소판효과로 무장하고 있다. 때문에 주로 ACS 환자의 심혈관사건 예방을 위한 항혈소판요법으로 권고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최근 ‘이중항혈소판요법 적용기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 관상동맥질환 환자에게 1개월에서 1년 이상에 이르는 항혈소판제 병용요법을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이중항혈소판요법은 심혈관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과 P2Y12 억제제(클로피도그렐, 프라수그렐, 티카그렐러)를 특정기간 병용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이 가이드라인을 보면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에서 P2Y12 억제제 선택에 있어 티카그렐러와 프라수그렐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항응고치료
항혈전치료가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는 분야는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이다. 와파린과 아스피린이 사용돼 오던 이 분야의 항혈전치료에 새로운 경구용 항응고제 NOAC(new oral anticoagulant therapy)이 본격 적용되면서 항응고치료의 처방률과 임상성과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 NOAC의 임상적용과 관련해 4가지 키워드가 주목된다. 임상연구·리얼월드·아시아인·급여확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모두 새로운 경구 항응고요법의 역할을 대변해주고 있다. 현재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에 사용할 수 있는 NOAC은 다비가트란, 아픽사반, 리바록사반, 에독사반 등이다. 이들 제제는 승인 전 대규모 임상연구인 RE-LY, ARISTOTLE, ROCKET-AF, ENGAGE AF-TIMI 48 등을 통해 와파린 대비 대등 또는 우수한 뇌졸중 예방효과와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출혈위험, 특히 두개내출혈에서 안전성을 보고해 왔다.

한편 NOAC 제제들은 시판후 실제 임상현장의 처방사례를 검증한 리얼월드(real world) 연구에서도 유의한 혜택과 안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된 NOAC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실제 진료현장의 환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NOAC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큰 힘을 받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역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다. 일련의 임상연구 하위그룹 분석과 이들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등에서 아시아 환자에게 부여되는 위험 대비 혜택이 서양인과 비교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우리나라에서는 NOAC 처방에 대한 급여가 확대·적용되고 있다. 와파린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심방세동 고위험군에게 1차약물로,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상연구·리얼월드·아시아인 데이터 등 키워드에 더해 급여확대라는 화룡점정이 더해지면서 국내 NOAC 처방률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로 인해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을 위한 경구 항응고치료의 비율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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