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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행 기차에 올라탄 고혈압 치료
  • 이상돈 기자
  • 승인 2018.02.02 11:56
  • 호수 59
  • 댓글 0

美 심장학계, 130/80mmHg SPRINT호 출발시켜
최종 목적지는 집중 혈압조절 거쳐 심혈관질환 예방

전세계 동승이냐 독자노선이냐 심사숙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K-SPRINT, K-AOBP, K-Risk Score

미국 심장학계가 던진 고혈압 관련 화두를 두고 각 지역·인종 국가마다 학계 및 보건당국의 장고(長考)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미국 학계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번 결정이 임상현장에 미칠 파장 또는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빠른 후속 조치가 급선무다.

미국발 고혈압 관련 개혁안은 2018년 세계 심장학계가 떠안은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미국은 ‘고혈압 치료’를 혁신행 기차에 태워 첫차를 출발시켰다. 이 기차에 동승할 것이냐, 아니면 독자적인 노선(路線)을 고수할 것이냐를 두고 각 지역·인종 국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발 고혈압 관련 혁신안과 이 변화가 임상에 미칠 파장, 그리고 각 지역·인종 국가의 대응방안에 대해 심도 깊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혈압 130/80mmHg 시대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2017년 말 새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양 학회는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고혈압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에 큰 변화를 줬다. 우선 혈압 130~139/80~89mmHg 구간을 고혈압 1단계로 정의, 130/8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질환 1·2차예방을 위해 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목표혈압도 과감하게 낮췄다. 이상의 모든 결정은 고혈압을 보다 앞서 진단해 조기에 치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을 사전에 막겠다는 학계와 보건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혁신행 기차 ‘SPRINT’호

미국 심장학계의 이번 결정은 미국 보건당국(NHLBI)이 지원한 SPRINT 연구에 전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조절의 임상혜택을 검증키 위한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으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뇌졸중 외 심혈관질환 병력, 만성 신장질환, 10년내 심혈관질환 위험 15% 이상, 75세 이상 연령대)에 해당하는 50세 이상 연령대 9361명을 대상으로 했다.

환자들은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 목표(집중조절군) 또는 140mmHg 미만 그룹(표준치료군)으로 무작위 배정돼 3.26년(중앙값)의 치료·관찰이 이뤄졌다. 혈압은 의료진이 없는 상태에서 자동혈압계(automated measurement system)를 통해 수 분 간격을 두고 3회 측정이 이뤄졌다.

1년시점에서 두 그룹의 평균 수축기혈압은 121.4mmHg 대 136.2mmHg로 큰 차이를 보인 가운데 종료시점까지 격차가 유지됐다. 1차 종료점 복합빈도(심근경색증·여타 관상동맥질환·뇌졸중·심부전·심혈관 원인 사망)는 연간 1.65% 대 2.19%로 집중조절군의 상대위험도가 25% 유의하게 감소했다(hazard ratio 0.75, P<0.001).

120mmHg 아닌 130mmHg?

학계가 보건당국 지원의 임상연구에 근거해 고혈압 기준을 130/80mmHg 이상으로, 목표혈압은 130/80mmHg 미만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ACC·AHA 가이드라인과 SPRINT 연구 간에는 한 가지 불일치하는 대목이 존재한다. SPRINT 연구는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조절의 심혈관 임상혜택을 확인했다. 반면 새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13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도록 권고했다.

120mmHg와 130mmHg를 두고 어떤 줄다리기가 있었던 것일까? 임상연구와 진료현장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극복하고자 타협점을 찾았고, 그 결과물이 130mmHg 미만이라는 분석이다. 학계에서는 SPRINT 연구를 두고 120mmHg 미만보다는 130mmHg 조절의 임상혜택이 규명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 바 있다.

연세의대 박성하 교수(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는 “SPRINT에서는 의사나 간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혈압계로 측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실제 진료실 혈압보다 5~7mmHg 낮다고 보면 된다”며 “실제 진료현장을 대입하면 140mmHg 대비 130mmHg의 임상혜택을 비교한 것과 같다”고 130mmHg 혜택설을 지지했다. 일련의 메타분석에서도 140mmHg 미만 대비 심혈관 임상혜택이 130mmHg 미만대에서 집중적으로 관찰되면서 120mmHg 미만조절에 부담을 느낀 ACC와 AHA가 혁신에 따른 저항을 줄이기 위해 130mmHg를 1차 마지노선으로 잡았다는 분석이다.

130/80mmHg 시대의 고혈압 치료

고혈압 경계치를 낮춰 임상에 적용할 경우, 유병률이 상승한다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ACC·AHA 2017년판의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미국의 고혈압 유병률(혈압 130/80mmHg 이상 또는 항고혈압제 사용 자가보고)은 46%로, 성인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혈압으로 분류돼 막대한 비용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한고혈압학회 측은 미국의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인인구의 32.0%였던 고혈압 유병률이 50.5%로 급증한다고 밝혔다. 목표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낮춰 적용할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혈압을 목표치까지 낮추고 유지하는 조절률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할 것도 불을 보듯 훤하다.

앞당겨지는 항고혈압제 치료

항고혈압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고혈압 치료의 시작은 혈압수치와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종합해 판단한다. ACC·AHA는 “심혈관질환 병력자이면서 혈압이 130/80mmHg 이상인 경우에 심혈관질환 2차예방을 위해 항고혈압제 치료가 권고된다”고 밝혔다.

심혈관질환 1차예방과 관련해서는 10년내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발생위험이 10% 이상이면서 혈압 130/8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단 10년내 ASCVD 발생위험이 10% 미만인 경우에는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치료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 경우 일부 고혈압 환자들에게 이전보다 빠른 항고혈압제 치료를 적용해야 한다.

병용요법 더 강화돼

ACC·AHA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과거 고혈압 1단계였던 140/90mmHg 이상 구간이 고혈압 2단계로 격상됐다. 이 변화가 항고혈압제 치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양 학회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보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시작시점이 더욱 더 앞당겨진다.

양 학회는 새롭게 규정한 고혈압 2단계(140/90mmHg 이상)의 환자부터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했다.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처음부터 2개 이상의 약제를 적용하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최선의 치료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동승 vs 독자노선

미국 심장학계가 고혈압 기준 130/80mmHg 이상과 목표혈압 130/80mmHg 미만조절로 무장한 SPRINT호를 개통함에 따라, 전세계 학계도 이 기준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독자적인 치료지침을 만들 것이냐를 놓고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 일단은 조기의 적극적 혈압조절을 통한 심혈관질환 예방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기조인 가운데, 각 지역·인종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가 필요한 만큼 지금 당장 혁신행 기차에 올라타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있다.

K-SPRINT

우리나라의 경우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 데이터가 태부족이라는 점이 미국과의 동승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한다. 경희의대 손일석 교수(강동경희대병원 순환기내과, 대한고혈압학회 홍보이사)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에서 적극적인 혈압조절의 심혈관 임상혜택이 입증돼 있는 만큼, 미국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이와 관련한 한국인 데이터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미국의 기준을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SPRINT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대한고혈압학회가 보건당국과 K-SPRINT 연구의 진행을 타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K-AOBP

JB lab & clinic 박정배 원장은 미국발 혁신행 기차에 동승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가지 선행되는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선 SPRINT 연구에 적용된 새로운 진료실 혈압측정 체계가 우리나라에도 정착돼야 미국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OBP(automatic office blood pressure) 측정법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혈압계로 3회의 혈압측정이 이뤄진다. 백의효과(white coat effects)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의 혈압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의 AOBP 혈압측정 체계, 즉 K-AOBP를 선행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K-Risk Score

그는 또 “ACC·AHA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고혈압 치료전략은 혈압과 함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아직 우리나라 환자에게 적합한 심혈관질환 위험도 예측모델이 명확히 확립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의 예측모델을 그대로 한국인에게 적용할 경우 과다예측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임상특성을 반영한 K-Risk Score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종합하면 미국발 고혈압 치료혁신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의 근간 또는 토대가 됐던 사전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으로, K-SPRINT·K-AOBP·K-Risk Score 등의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우리나라 학계가 적시에 올바른 결정을 내려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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