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변동성

“환자에게 말을 걸거나 갑자기 쳐다보는 행동, 갑작스러운 소음, 길거리에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 등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혈압을 증가시킬 수 있다. 간단한 기구를 환자의 몸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인 혈압상승이 야기된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형태의 혈압측정계를 개발한 이탈리아 의사 리바-로찌(Scipione Riva-Rocci)가 한 말이다.

혈압이 신체 내·외부적 상황에 따라 다변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돼 왔다. 잠자리에 들 때와 일어났을 때의 혈압이 다른 수치를 나타내며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는 것, 일중(daily)은 물론 계절에 따라서도 혈압의 높고 낮음이 변덕을 부린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해보면, 이같은 현상을 아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혈압 변동성이 고혈압 환자의 예후, 즉 심혈관사건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와 함께 변동성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전략도 논의되고 있다.

가면 고혈압

일상생활에서 혈압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가면 고혈압이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측정한 혈압은 정상인데, 병원 밖 일상생활권에서는 혈압이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진료실 혈압만 보면 가면 고혈압 환자 역시 혈압이 정상이거나 제대로 조절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 환자들은 실제로는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고혈압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가면 고혈압 환자들은 잘못된 혈압측정값으로 인해 항고혈압제 치료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심혈관질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도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만 작용하는 항고혈압제로는 한계가 있다. 나머지 위험한 시간대의 혈압상승을 막을 수 없고, 이 같은 치료 사각지대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단편적인 혈압강하만 이뤄지기 때문에 그 만큼 심혈관질환 위험이 상승하게 된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가면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사건과 뇌졸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European Heart Journal 2017).

야간·아침 고혈압

특히 아침이나 야간에 발생하는 혈압상승 병태가 심뇌혈관질환 위험증가와 상관관계를 보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야간·수면 시간대에 혈압이 안정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승하거나(non-dipper), 아침기상 시에 혈압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는 병태다.

한 연구에서는 야간·수면 중 혈압이 떨어지는 경우(dipper)와 비교해 상승하는 환자(riser)의 뇌졸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Hypertension 2001).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침 수축기혈압이 135~145mmHg 이상으로 높은 경우에 심혈관사건 위험이 증가했다(Hypertension 2014).

ARB & CCB

때문에 단독 또는 복합제, 즉 하나의 정제로 다음 복용 때가지 조(朝)·주(晝)·야(夜)에 이르는 모든 시간대의 혈압상승을 끌어 내리고 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혈압치료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4시간 일관되게 혈압을 강력하게 조절할 수 있는 항고혈압제가 필요하다는 것.

혈압 변동성을 줄이며 안정적으로 혈압을 조절하는 약제로는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와 칼슘길항제(CCB)가 대표적이다. 두 계열 중 텔미사르탄과 암로디핀은 타 약제와 비교해 혈압 변동성을 개선해 일관된 혈압조절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H. Hypertens 2010).

긴 반감기를 갖춰 장기 지속형 항고혈압제로 불리는 두 약제는 병용 시에 각각의 단일요법과 비교해 24시간 평균혈압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혈압조절 지속의 유지를 나타내는 SI(smoothness index)까지 유의하게 개선했다(Hypertension Research 2013).

순응도

항고혈압제 고유의 혈압강하력과 심혈관 보호효과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순응도를 개선코자 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복약 순응도가 떨어질수록 사망률, 허혈성 심장질환, 뇌졸중 등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Hypertension 2016). 때문에 약물갯수를 줄이기 위해 단일제형복합제(single pill combination)를 개발하거나 정체의 크기를 축소해 복약부담을 줄이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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