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에 대한 항고혈압제의 역할

심부전 환자와 관련된 항고혈압제 사용의 적응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혈압에 의해 심부전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항고혈압제의 사용이고 두번째는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심부전(heart failure with reduced ejection fraction, HFrEF) 환자에서 심부전의 진행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항고혈압제의 사용이다. 후자의 경우는 혈압을 낮추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고혈압제’라는 표현보다는 ‘심부전 약제’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환자들이 해당 약제를 ‘항고혈압제’로 인식하고 있고 이런 약제 사용에 있어 환자의 혈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심부전 예방을 위한 항고혈압제

심부전의 예방 관점에서 항고혈압제의 사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혈압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서 심부전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1996년 Levy 등이 진행한 Framingham Offspring 연구에서 고혈압이 있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2배, 고혈압이 있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3배 심부전의 발생 위험이 높았다. 또한 고혈압이 심부전 발생에 기여하는 비율은 남성에서는 39%, 여성에서는 59%로 심부전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보고했다.

또한 1997년 Kostis 등은 심근경색증이 발생한 환자들에서 고혈압을 치료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대비 심부전의 발생 위험이 50% 감소함을 보고해 고혈압 치료로 심부전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런 혈압과 심부전의 상관관계는 일반적인 고혈압 기준인 140/90mmHg 이하 정상 범위의 혈압에서도 여전히 유의하다. 즉, 120/80mmHg 미만의 이상적인 혈압과 비교할 때 120~129/80~84mmHg의 정상 혈압 혹은 130~139/85~89mmHg의 높은 정상 혈압에서도 심부전의 발생 위험은 유의하게 증가한다.

이런 근거로 기존 가이드라인의 고혈압 치료 목표인 수축기혈압 140mmHg 대신 수축기혈압 120mmHg를 치료 목표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의 효과를 보고자 한 SPRINT(A Randomized Trial of Intensive versus Standard Blood-Pressure Control) 연구가 진행됐고 그 결과 120mmHg를 목표로 치료할 때 심부전 발생이 33% 감소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심부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혈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HFrEF에서 항고혈압제 사용

두번째,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심부전 환자에서의 항고혈압제 사용을 살펴보겠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용어 상의 문제가 실제 진료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며 환자의 약물 순응도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좌심실 박출률(left ventricular ejection fraction)이 40% 이하로 감소한 심부전 환자에서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inhibitor)나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ngiotensin receptor blocker)와 베타차단제(beta-blocker)를 금지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사용할 것을 여러 가이드라인에서 일관되게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제들이 심부전의 진행을 막고 생존률을 높이는 ‘심부전약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항고혈압제’로 분류되고 약국에서 그렇게 설명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나는 고혈압이 없는데 왜 이 항고혈압제를 먹어야 하지?”, 혹은 “혈압이 정상인데 이 약제를 먹어야 하나?” 등의 의문을 갖고 약제를 자의로 중단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좌심실 박출률이 35% 이하이면서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스피로놀락톤과 같은 알도스테론길항제를 추가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데 스피로놀락톤 역시 혈압 강하 효과가 좋은 항고혈압제 중 하나이다.

HFrEF에서 ARNI 

최근에는 안지오텐신수용체길항제와 네프릴리신의 이중억제제(angiotensin receptor neprilysin Inhibitor)가 개발돼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나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를 대체할 수 있는데 이 약제 역시 혈압 강하 효과가 뛰어나다. 즉,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심부전 환자에서는 혈압을 낮추는 목적이 아니라 심부전의 진행을 촉진하고 생존율을 감소시키는 신경-호르몬의 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이런 항고혈압 효과가 있는 심부전약제들을 사용하게 된다.

한편, 심부전 환자에서는 심기능의 저하로 인해 좌심실의 박출량이 감소해 수축기혈압이 감소할 수 있는데 특히 국내 심부전 환자의 평균 혈압은 외국의 심부전 환자들 보다 유의하게 낮은 것이 KorAHF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또한, 안지오텐신수용체길항제와 네프릴리신 이중억제제의 효과를 평가했던 PARADIGM-HF연구에 등록된 환자들의 평균 수축기혈압 130mmHg과 비교해 KorAHF에 등록된 환자들의 퇴원 시점 수축기혈압은 115mmHg, 1년 후는 120mmHg로 유의하게 낮았다. 급성 심부전 환자에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네프릴리신의 이중억제제의 효과를 연구한 PIONEER-HF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심부전 환자에서의 낮은 혈압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PIONEER-HF 연구에서는 등록시점 평균 수축기혈압이 118mmHg였고 25% 환자의 수축기혈압이 110mmHg 이하였는 데 전체 환자의 20%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네프릴리신의 이중억제제의 사용을 중단했다. 반면 KorAHF에 등록된 환자에서는 약 32%의 환자의 수축기혈압이 100mmHg였다. 이를 고려하면 국내 환자에서는 혈압 문제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네프릴리신의 이중저해제의 사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최근 국내에서 사용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네프릴리신의 이중 억제제의 초기 사용 용량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50mg을 선택하고 있다. 이렇듯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심부전 환자에서는 낮은 혈압이 ‘심부전약제’ 혹은 일반인의 표현대로 ‘항고혈압제’의 사용에 큰 걸림돌이 된다.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

그렇다면 혈압이 낮아도 심부전약제를 사용해야 하는가 혹은 어느 혈압까지 심부전약제를 사용하거나 증량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임상연구는 부족한 상태로 현재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심부전약제 사용과 관련된 혈압 기준은 제시하지 않고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용량까지 증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KorAHF 연구진은 이런 질문에 대한 간접적이나마 답을 찾기 위해 KorAHF에 등록된 환자들에서 혈압과 생존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둘 사이에는 역의 J-curve형태의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심부전 환자의 생존율이 가장 높은 혈압은 수축기혈압 132mmHg, 이완기혈압 74mmHg였다. 이보다 혈압이 높은 경우뿐만 아니라 낮은 경우에도 사망률은 가파르게 증가한다(그림 1).

 좌심실 박출률이 저하된 심부전만 분리해서 보면 생존률이 가장 높은 지점은 수축기혈압 136mmHg, 이완기혈압 77mmHg였다. 다만, 이 결과를 가지고 132/74mmHg 이 혹은 136/77mmHg 이하에서는 혈압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심부전약제를 처방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는 여러 가지 질환으로 환자의 전신상태가 나쁘면 혈압이 낮을 수 있고,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수축기 혈압은 좌심실의 기능 저하를 반영하며, 이완기혈압의 저하는 큰 맥압(pulse pressure) 때문에 일 수 있어 낮은 혈압과 낮은 생존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압이 낮은 환자에서 현재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대로 환자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항고혈압제’ 혹은 ‘심부전약제’를 증량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율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정리하면, 심부전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에서는 이를 예방을 위해 이상적인 혈압까지 혈압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심부전 환자에서 생존률과 심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항고혈압제'이기도한 심부전약제를 반드시 투약해야 한다. 하지만, 심부전 환자에서의 낮은 혈압과 심부전약제 사용 후 혈압의 감소는 이러한 적절한 약물 치료의 큰 걸림돌이 된다. 향후 심부전 치료에 있어 적절한 혈압 목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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