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구·메타분석 들여다보니

2018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RAS(레인·안지오텐신계)억제제는 심부전·좌심실비대·관상동맥질환·만성 신장질환·뇌졸중·심근경색증 후·당뇨병 등 다수의 동반질환 고혈압 환자에게 추천되는 항고혈압제 계열로 언급되고 있다. 그 만큼 혈압강하력에서 더 나아가 심혈관보호효과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혈압학회 진료지침에는 RAS억제제와 관련해 “심부전 환자의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신장기능장애의 진행억제에 효과적”이라며 “좌심실비대와 죽상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돼 있다. 특히 “혈관내피세포기능을 개선시키고 혈관재형성에 이로운 효과가 있다”며 심혈관보호효과를 언급한 대목이 주목된다. RAS억제제 중에서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계열의 페린도프릴이 일련의 임상연구를 통해 단독과 병용 모두에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 및 사망위험 감소혜택까지 검증받은 바 있다.

광범위한 심혈관보호 기전

ACEI는 일련의 임상연구에서 심부전과 죽상동맥경화증 진행을 지연시키는데서 더 나아가 심부전·좌심실기능장애 환자의 사망 및 합병증 위험을 감소시키는 임상혜택을 보인 대표적 항고혈압제다. 하지만 학계는 ACEI의 역할을 심부전이나 좌심실기능장애 환자에 국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ACEI 기전과 관련해 혈압강하 효과 이외에 안지오텐신II 감소와 브라디키닌 활성화 증가 등을 통한 ACEI의 직접적인 심혈관보호효과가 밝혀지면서, 학계는 좀 더 광범위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에게 약물을 적용키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혈관내피세포기능 개선·플라크 안정화·섬유소 용해 개선 등으로 대변되는 항동맥경화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면서, ACEI의 적용이 심부전이나 좌심실기능장애 환자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ACEI

ACEI는 이렇게 광범위한 심혈관보호효과를 무기 삼아 일련의 임상연구에서 궁극적인 심혈관사건 위험감소 혜택을 앞서서 입증받았다. ACEI의 심혈관 임상혜택을 직접 규명한 랜드마크 연구는 EUROPA가 대표적이다. 연구는 심근경색증·혈관조영술상 관상동맥질환 증거·관상동맥재형성술 등 1만 2218명의 환자들을 페린도프릴(1일 8mg) 또는 위약군으로 나눠 평균 4.2년 치료·관찰했다. 두 그룹의 1차종료점(심혈관 사망, 심근경색증, 또는 심장발작) 발생비율은 페린도프릴군 8%(488명) 대 10%(603명)로, 페린도프릴군의 상대위험도가 20% 유의하게 낮았다(P=0.0003).

ACEI + CCB

ACEI 페린도프릴은 다른 계열의 항고혈압제와 병용 시에도 심혈관사건은 물론 전체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됐다. 먼저 ASCOT-BPLA 연구는 고혈압 환자 약 2만명(1만 9257명)을 대상으로 암로디핀 + 페린도프릴과 아테놀롤 50~100mg + 벤드로플루메티아지드 병용치료를 비교했다.

5.5년(중앙값) 시점에서 비치명적 심근경색증과 치명적 관상동맥질환은 429명 대 474명으로 암로디핀 + 페린도프릴 군의 위험도가 10% 낮았다(P=0.1052). 치명적·비치명적 뇌졸중은 23%(P=0.0003), 전체 심혈관사건 16%(P＜0.0001), 사망률은 11%(P=0.025) 감소하는 등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연구는 조기종료됐다.

ACEI + 이뇨제

ACEI 기반 병용요법의 사망률 감소혜택을 입증한 연구로는 ADVANCE도 있다. 당뇨병 환자에서 ACEI 페린도프릴과 이뇨제 인다파미드 고정용량 병용요법으로 혈압을 강하시킬 경우 주요 심혈관 및 미세혈관합병증 위험이 감소됨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다.

평균 4.3년 관찰결과, 병용군의 주요 심혈관 또는 미세혈관사건이 위약군 대비 9% 유의하게 감소했다(P=0.04). 심혈관 원인 사망은 각각 3.8% 대 4.6%로 페린도프릴 병용군이 18% 유의하게 낮았다(P=0.03).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전체 사망률) 역시 병용군에서 14%의 감소혜택이 확인됐다(P=0.03).

메타분석서 사망률↓

RAS억제제의 사망위험 감소혜택과 관련해서는 ACEI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보다 좋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이탈리아 페데리코대학병원의 Gianuluigi Savarese 교수팀이 JACC에 ‘심부전 없는 고위험 고혈압 환자에서 ACEI와 ARB의 효과’에 관한 메타분석 결과를 발표, 이 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ACEI 치료군에서 위약군 대비 심혈관사건 복합빈도, 심근경색증, 뇌졸중, 사망률, 신규 심부전이나 당뇨병 발생빈도가 모두 유의하게 낮았다”고 보고했다. ARB는 위약군 대비 심혈관사건 복합빈도, 뇌졸중, 신규 당뇨병 발생빈도가 유의하게 낮아 혜택을 보였으나, 전체 사망률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또 European Heart Journal에는 ‘RAS억제제의 사망률 감소효과에 관한 메타분석’ 결과가 발표돼, ACEI의 사망률 감소효과가 다시 한 번 부각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여타 항고혈압제와 비교해 RAS억제제 치료군의 전체 사망률이 유의하게 낮았는데, 이 같은 혜택이 ACEI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분석 결과, RAS억제제 치료군의 사망률은 연간 1000명당 20.9명으로 대조그룹(연간 1000명당 23.3명)과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RAS억제제 그룹의 사망률은 대조군에 비해 5%(P=0.032) 정도 유의하게 낮았다. 특히 ACEI군의 사망률은 대조그룹에 비해 10%(P=0.004) 감소한 반면, ARB 치료군에서는 유의한 사망률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다(hazard ratio 0.99, P=0.683).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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