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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더 빨리·더 강하게”에 한국·유럽도 화답했다

美 가이드라인, 고혈압 진단기준·목표혈압 130/80mmHg에 맞춰

타 지역 심장학계, “정의는 지키고 혈압조절은 강하게”

새 패러다임은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많이”

  • 이상돈 기자
  • 승인 2020.11.02 17:30
  • 호수 93
  • 댓글 0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봉착한 미국 심장학계가 고혈압의 폐해를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듯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고혈압에게 진검승부를 가리자며 도전장을 내민 것. 새 도전장에는 고혈압을 더 빨리 잡아내고 더 강하게 공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본지는 당시 고혈압이 받아든 도전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2017년 새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양 학회는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고혈압의 진단기준과 목표혈압에 큰 변화를 줬다. 우선 혈압 130~139/80~89mmHg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정의, 130/8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정의했다. 더불어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질환 1·2차예방을 위해 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목표혈압도 과감하게 낮췄다. 이상의 모든 결정은 고혈압을 보다 앞서 진단해 조기에 치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을 사전에 막겠다는 학계와 보건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THE MOST 59호 Cover Story ‘혁신행 기차에 올라탄 고혈압 치료’)

미국의 도전장

ACC와 AHA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해석해 보면 결국 고혈압의 빠른 진단과 치료, 그리고 강한 치료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다. 진단기준을 수정한 것은 고혈압을 더 빨리 진단해 치료시기를 더 앞당기겠다는 심산이다. 또 목표혈압을 엄격히 낮춘 것은 더 강력한 혈압조절을 통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저변에 깔려 있다.

진단기준 왜 건드렸나?

먼저 130/80mmHg로 낮춘 고혈압 정의를 살펴보자. 미국은 130~139/80~89mmHg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고혈압전단계 구간은 120~129/<80mmHg로 축소됐다. 정상혈압은 여전히 120/80mmHg 미만이다. 美 심장학계가 이 처럼 고혈압 진단기준을 낮춘 배경에는 고혈압을 조기에 진단하고 보다 빨리 적극적으로 치료하자는 주장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가이드라인위원회 관계자는 “고혈압전단계 후반구간(130~139/ 80~89mmHg)부터 정상혈압과 비교해 심혈관질환 위험이 2배가량 증가하는 등 차이를 보이는 만큼, 이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정의해 빠른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배경을 밝혔다. 결국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해 이전보다 빨리 치료에 임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심혈관질환 위험까지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더 빠르게”

고혈압 치료의 1차목표는 혈압조절, 즉 강압에 있다. 혈압조절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가장 막중한 책무 중 하나다. 하지만 혈압을 정상에 가깝게 조절해야 하는 이유가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기 위함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고혈압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혈압조절을 통해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데 있다.

고혈압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을 유념한다면, 이를 위한 전략은 조기치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고혈압 환자에서 심혈관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시점부터 빠른 진단과 치료가 시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일반적으로 115/75mmHg부터 시작해 혈압이 20/10mmHg씩 오를 때마다 허혈성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에 따른 사망위험이 두 배가량 상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혈압전단계로 불리는 수축기혈압 130mmHg 부근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심장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임상에 적용할 경우 고혈압 유병률이 급증하고 혈압조절률은 급락할 것이라는 부담 또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쟁점이다. 미국은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고혈압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새 도전장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목표혈압도 낮췄다

미국의 고혈압 가이드라인과 관련해서는 130/80mmHg로 낮춘 목표혈압에도 많은 셈법이 담겨 있다. ACC와 AHA는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 이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고혈압 환자 전반의 혈압을 130/80mmHg 미만까지 낮추도록 권고했다. 고혈압 환자에서 심혈관질환 1·2차예방을 위한 혈압조절 목표치를 130/80mmHg 미만에 맞춘 것으로, 과거 140/90mmHg 미만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더 강하게”

고혈압 환자의 혈압강하 치료가 심뇌혈관합병증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명확히 확립돼 있다. 또 한 자릿수의 혈압수치 차이로도 심혈관질환 예방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이 시사되면서 혈압은 안전선까지 최대한 낮춰야 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혈압강하를 최대한 이뤄내자는 접근법, 즉 ‘The Lower, The Better’ 개념이 고혈압 치료를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일련의 관찰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서 수축기혈압 115mmHg를 초과하면서부터 심혈관질환 위험이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되면서(Lancet 2002), 임상연구를 통해 심혈관 임상혜택이 확인된 140mmHg을 상한선으로 두고 정상혈압(120/80mmHg)에 가깝게 최대한 강압하는 것이 대세였다.

때문에 2000년대 초반 고혈압 가이드라인 대부분이 140/90mmHg 미만을 고혈압 환자 전반의 혈압 목표치로 적용하면서도, 당뇨병·신장질환·심혈관질환 병력자들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보다 적극적인 혈압강하를 주문했다. 이들 질환이 동반된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사건 위험이 매우 높은 만큼, 혈압을 낮추면 낮출수록 심혈관질환 위험감소의 폭이 크다는 ‘The Lower, The Better’접근법을 적용한 것이다.

J-curve 역풍

하지만 계속 하강세를 고집하던 목표혈압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을 만나게 된다. 바로 ‘수축기 또는 이완기혈압을 지나치게 낮추면 어느 시점부터 심혈관사건 및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J-curve Hypothesis(J-곡선 가설)’의 등장이었다. ONTARGET, INVEST 연구의 사후분석에서 과도한 강압에 의해 심혈관 사망률이 증가하는 ‘J-curve Hypothesis’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ACCORD-BP 연구에서 보다 낮게 혈압(수축기혈압<120mmHg)을 유지한 당뇨병 환자에서 기존 140mmHg 미만군과 비교해 이득이 관찰되지 않음으로써 심혈관질환 고위험 환자군에 대한 강력한 강압의 이론적인 근거가 흔들리게 됐다. 이에 따라 2012년 발표된 유럽심장학회(ESC)의 심혈관질환 예방 가이드라인부터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40/80mmHg 미만으로 조정해 권고하기 시작했고,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혈압조절 강도의 완화가 수면 위로 공식 부상했다.

유럽심장학회(ESC)는 2013년판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경증~중증에 이르는 전반적인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 목표치를 140/90mmHg 미만으로 통일시켜 적용했다. 더 중요한 대목은 당뇨병·심혈관질환·신장질환 환자 등 심혈관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30mmHg에서 140mmHg 미만으로 완화해 권고했다는 점이다. 2013년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JNC 8차 보고서), 2014 미국당뇨병학회(ADA) 가이드라인, 2013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 모두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혈압조절과 관련해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의 부재를 알렸다.

SPRINT발 역전극

이 흐름을 단번에 뒤집어 버린 장본인이 바로 SPRINT 연구다.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 목표치 그룹(집중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3개)과 140mmHg 미만 그룹(표준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2개)을 비교한 결과, 심근경색증·여타 관상동맥질환·뇌졸중·심부전·심혈관 원인 사망의 복합빈도가 연간 1.65% 대 2.19%로 집중조절군의 상대위험도가 25% 유의하게 감소했다(hazard ratio 0.75, P<0.001). 결국 ACC와 AHA는 이 연구결과에 근거해 고혈압 환자 전반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40mmHg 미만도 아닌, 120mmHg미만도 아닌 13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권고했다.

대한민국의 응답은?

미국의 심장학계는 이 처럼 “더 빨리,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고혈압에게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심장학계는 스스로의 전통은 고수하면서 미국의 슬로건에 화답하는 모습을 분명히 했다.

美 학계가 던진 고혈압 관련 화두에 대한 우리 학계의 최종적인 답변은 새롭게 발표된 ‘2018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회 측은 미국발 고혈압 혁신과 관련해, 진단기준은 상당 부분 과거의 전통을 유지·고수하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치료에 있어서는 목표혈압을 더 내리는 등 진보적 태도를 견지했다.

“정의는 지킨다

고혈압학회의 답변은 명확했다. 미국이 “이제 고혈압은 130/80mmHg 이상부터”라는 주장이었다면, 우리나라는 “고혈압은 일관되게 140/90mmHg 이상부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학회는 고혈압 진단기준과 관련해 “진료현장에서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기준혈압으로서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가 더욱 분명해진 140/90mmHg을 제시한다"며 전통적 기준에 더 힘을 실었다.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엄격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에서 약물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역치 이상의 혈압”이라며 수축기혈압 140mmHg 이상을 고혈압으로 정의한 것이다.

“140mmHg 미만이지만 130mmHg까지”

고혈압학회는 새 진료지침에서 고혈압 진단은 전통적인 기준을 고수하는 한편, 치료에 있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목표혈압을 기존보다 엄격하게 내려 잡은 것이 대표적인 치료혁신이다.

만저 학회 측은 단순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특성)에 따라 더 낮은 수위까지 낮출 수 있다고 언급했다. “통상 140/90mmHg 미만조절 권고는 수축기혈압을 130~139mmHg 범위에서 혈압을 유지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진료지침에서는 심뇌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를 반영해 140/9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더라도 130/80mmHg까지 혈압을 최대한 낮추도록 권고했다”며 보다 낮은 구체적인 강압수치를 적시했다.

“130/80mmHg 미만”

힌편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고혈압 환자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적극적인 혈압조절을 권장했다. 단순 고혈압 환자에게는 140/90mmHg 미만조절을 권고하는 반면에 당뇨병 환자에게 140/85mmHg(심혈관질환 無) 또는 130/80mmHg(심혈관질환 有) 미만조절을 권고했다. 심혈관질환 고위험군과 병력자에게는 130/80mmHg 미만을, 알부민뇨가 동반된 만성 신장질환 환자도 130/8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도록 했다.

“더 빨리, 더 강하게”에 화답

적극 혈압조절로 인해, 항고혈압제 치료시작 시점 또한 일부 앞당겨졌다. 고혈압 치료와 관련해 “더 빠르게, 더 강하게”의 기조를 가이드라인에 적극 반영한 것이다. 한편 ESC와 유럽고혈압학회(ESH)도 2018년 가이드라인을 통해 고혈압 환자 전반에 140/90mmHg 미만조절을 권고하는 동시에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에게는 130/80mmHg 미만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혈압을 조절하도록 권고했다. 역시 “더 빠르게, 더 강하게”의 기조를 반영한 결과다.

그런데 유럽의 가이드라인에서는 한 가지 특장점이 더 관찰된다. 약물치료와 관련해 대부분의 환자에게 2제 병용요법을 권고하는 동시에 순응도를 고려해 단일제형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 적용을 우선하도록 권고한 대목이다. ESC와 ESH는 혈압조절의 유효성과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대부분의 환자에서 두 약제를 혼합한 SPC 제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주문했다.

유럽은 “더 많이”

미국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봐도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시기가 더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ACC와 AHA는 스스로 변화를 줘 지정한 고혈압2단계(140/90mmHg 이상)의 환자, 그리고 혈압이 목표치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 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했다.

이 권고안을 임상에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혈압1단계인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 양 학회는 더불어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처음부터 2개 이상의 약제를 적용하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최선의 치료일 수 있다”며 병용요법 조기적용의 시대를 예고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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