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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화된 유병패턴 치료도 달라져야 하나?대한민국, 전통과 서구화 공존하는 과도기
고LDL콜레스테롤혈증이 패권 잡으려
서구화 전형 인슐린저항성·비만형당뇨병 증가세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으로 패러다임 전환
  • 이상돈 기자
  • 승인 2021.01.04 18:42
  • 호수 94
  • 댓글 0

만·성·질·환

만성질환(慢性疾患)의 사전적 의미는 ‘증상이 그다지 심하거나 뚜렷하지 않으면서 오래 끌고 낫지 않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는 ‘갑작스러운 증상이 없이 서서히 발병해 치료와 치유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질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증상이 없이’, ‘서서히 진행해’, ‘치료가 어렵다’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

침묵의 살인자

본 호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표적 만성질환은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고혈압 등과 이들의 종착역인 심뇌혈관질환이다.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로도 불리는 이들 만성질환은 일명 ‘침묵의 살인자’ 또는 ‘소리 없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우선 발병돼도 겉으로 인지할 수 있는 증상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당뇨병 등이 이환됐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을 못 느끼니 당장 불편함이 없어 진단도 받지 못하고 치료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 만성질환은 소리 없이 다가와 무장해제된 상대의 몸을 야금야금 좀먹다가 마지막 치명타를 가하고 다음 희생자를 찾아 유유히 사라진다. 치명타란 합병증을 의미하는데, 바로 심뇌혈관질환 이환 또는 이에 따른 치명적 장애나 사망이다.

심뇌혈관질환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당뇨병 등 또는 이들의 집합체(대사증후군)는 공통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를 초래한다. 이는 곧 혈관에 죽상경화반을 동반하는 죽상동맥경화증을 야기시킨다. 최종적으로 죽상동맥경화증이 장기간의 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안정형 죽상경화반의 파열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혈전 또는 색전이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을 막으면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역·인종 간 유병특성

그런데 최근 들어 만성질환의 인종 또는 지역 간 유병특성 차이에 대한 보고들이 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과 서양인 사이의 유병특성 차이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특성이 유전 또는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병특성 차이의 기전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연구들이 한창이다. 이를 통해 환자 개개인의 임상특성을 고려한 맞춤치료의 실현 가능성도 한층 더 가시화되고 있다.

전통·유전의 고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 만성질환의 유병특성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는 오랜 기간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생활습관이나 지리·사회·문화·경제 환경 속에서 서양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질환특성이 나타난다. 이 경우 유전적 요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습관 서구화

둘째는 최근에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동향으로, 과도기 환경의 변화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고수해 오던 전통적 생활습관이 서양을 따라가며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질환의 특성 또한 점차 서구화돼 가고 있는 현상이다.

아시아 지역은 기존의 전통적인 유병특성이 유지되는 동시에 서구화로 인한 질병패턴의 변화가 공존하는 과도기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혈압에 의한 뇌혈관질환이 여전히 높은 유병률을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출혈성이 감소하고 허혈성 뇌졸중이 증가하는 서구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뇌졸중에 비해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분비대사질환과 관련해서는 서양에 비해 비비만형 당뇨병이 여전히 많으나, 비만형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상지질혈증은 전통적으로 고중성지방혈증과 저HDL콜레스테롤혈증 비중이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서양인에서 강세였던 고LDL콜레스테롤혈증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맞춤치료 앞서 유병특성 파악부터

유병특성 따라 달라지는 치료전략 한국인 만성질환의 유병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를 치료하는 전략도 서양인 중심에서 우리나라 환자 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 정확한 맞춤치료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만성질환 환자들에서 관찰되는 유전·환경적 요인에 의한 임상특성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전제된다. 이를 통해 서양과 차이를 보여 왔던 유병특성에 근거한 치료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특히 전통적 특성과 서구화 패턴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개별 환자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치료전략을 맞춰가야 한다.

이상지질혈증의 서구화

먼저 이상지질혈증의 유병특성 변화, 즉 질병의 서구화 패턴을 살펴보자.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보고한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를 보면, 한국인 이상지질혈증 유병패턴은 물론 치료동향의 변화를 일견할 수 있다. 특히 최근 3~4년 사이 한국인에서 고LDL콜레스테롤혈증, 고중성지방혈증, 저H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의 변화를 자세히 보면, 이상지질혈증 유병패턴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증가세

최근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 패턴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LDL콜레스테롤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거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은 고중성지방혈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LDL콜레스테롤혈증의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상지질혈증과 전쟁의 판세가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최근 20세 이상 성인에서 이상지질혈증 유병률 및 관리현황을 총망라한 ‘2020 이상지질혈증 팩트시트(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20)’를 발표했다. 학계로부터 주목받은 대목은 고LDL콜레스테롤혈증(LDL-C≥160mg/dL) 유병률의 변화다.

먼저 2015년판 팩트시트에서 2013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인구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고중성지방혈증·저H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15.5%·18.6%·28.4%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높은 LDL콜레스테롤 병태에 비해 중성지방이 높고 HDL콜레스테롤은 낮아 서양인과 비교되는 아시아 지역·인종의 전형적인 유병패턴이 그대로 관찰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유병특성은 2018년 보고서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18’에서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2016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인구)은 17.6%로 변동이 일어났다. 한국인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2020년 보고서에서 다시 한 번 상승곡선을 그린다.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20’에서 2018년 기준 20세 이상 성인인구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19.2%에 달했다. 20세 이상 성인인구를 포함시킨 결과라 해도 전체 성인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수치다.

LDL-C·TG·HDL-C

최근까지 세 건에 걸친 이상지질혈증 팩트시트를 종합해 보면, 작금의 한국인 이상지질혈증은 서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졌던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고LDL·고중성지방(TG)·저HDL의 병태 중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뇨병의 서구화

당뇨병 또한 한국에서 서구화를 통해 과도기 단계를 거치고 있다. 우리나라 제2형당뇨병 환자의 경우 대표적인 발생원인으로 작용하는 인슐린저항성과 인슐린분비능저하 모두가 문제라는 것이 최근의 관찰결과다. 때문에 제2형당뇨병의 치료에 있어 인슐린분비능과 함께 인슐린저항성을 개선하는 약제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전적 특성

전통적인 한국인의 당뇨병은 인슐린분비능저하, 즉 베타세포 기능부전이 선행하는 특성을 보인다. 저하된 인슐린분비능이 제2형당뇨병 발생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장식한다. 비만하지 않은데도, 즉 인슐린저항성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제2형당뇨병이 자주 발생하는 특성이 이를 대변한다.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지거나 전혀 가동하지 못하면 제1형당뇨병이 발생한다. 하지만 인슐린분비능 자체가 저하돼 있는 경우에는 경증의 인슐린저항성만으로도, 약골이었던 베타세포가 부담을 받아 제기능을 못하고 고혈당이 유지되는 제2형당뇨병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전통과 서구화 공존

서울의대 박경수(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이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보고한 연구논문은 한국인 당뇨병의 유병특성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서양인에 비해 비비만형 당뇨병이 많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도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었는데, 박 교수팀이 10년간의 추적·관찰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감소돼 있는 인슐린분비능이 한국인 당뇨병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규명했다.

박경수 교수팀은 인슐린이 기능을 못해 고혈당이 지속되고 있음(인슐린저항성)에도 불구하고 인슐린을 계속 공급해야 할 췌장의 베타세포 기능 역시 기대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인슐린분비능저하)에 따라 제2형 당뇨병이 발생하는 기전이 한국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본래 인슐린분비능이 약한데다가 서구화된 생활습관에 의해 인슐린민감도마저 떨어지는 변화를 겪다 보니 혈당량 유지를 위해 췌장이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되고, 결국에는 지쳐버린 베타세포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고혈압 치료의 서구화

고혈압 분야에서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강화되는 서구의 치료패턴을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미국·유럽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약물병용 또는 복합제요법의 적용시점이 앞당겨지면서 바야흐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전성기가 예고되고 있다.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기 적용은 이미 보편화돼 있는 실정이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고혈압 환자에게 항고혈압제 병용치료의 일상적인 적용과 함께, 혈압이 160/110mmHg 이상이거나 20/10mmHg의 강압이 필요한 경우 처음부터 병용요법을 시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혈압 140/90mmHg 이상부터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선택의 시기를 더 앞당기고 있다. 더욱이 병용요법의 적용에 있어 순응도가 강조되는 가운데, 여러 성분을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단일제형 복합제(single pill combination, SPC)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병용요법 삼국지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적용시기를 앞당겨 권고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이다. 양 학회는 새롭게 정의한 고혈압 2단계(140/9mmHg 이상)의 환자, 그리고 목표혈압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권고했다. ACC와 AHA의 입장에서는 고혈압 2단계이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1기 고혈압인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심장학계 역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심장학회(ESC)와 고혈압학회(ESH)는 2018년 가이드라인에서 대부분의 환자에게 2제 병용요법을 권고했고, 순응도를 고려해 단일제형복합제(single pill combination) 적용을 우선하도록 당부했다. 즉 약물치료는 2제병용으로 시작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가급적이면 단일제형 복합제를 쓰도록 권고한 것이다. 단 쇠약한 (frail)환자, 80세 이상 고령, 심혈관 위험도가 낮은 환자, 수축기혈압이 150mmHg 미만인 1단계 고혈압 환자에게는 2제 병용요법을 피하도록 제한을 뒀다.

우리나라 역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치료초기부터 적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새 고혈압 진료지침을 통해 “혈압이 160/100mmHg 이상이거나 목표혈압보다 20/10mmHg 이상 높은 고위험군에서는 강압효과를 극대화하고 혈압을 빠르게 조절하기 위해 처음부터 항고혈압제를 병용투여할 수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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