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이 무서운 이유는 장기간 고혈당 노출로 인한 혈관합병증 이환과 사망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의 상당수가 대혈관합병증, 즉 심혈관질환(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말초동맥질환)으로 사망한다. 미세혈관합병증(당뇨병성 망막병증, 신경병증, 신장병증, 족부질환) 역시 환자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한다.

혈당이 정상보다 높을 경우 체내 단백질이 당화(glycation)된다. 이로 인해 단백질의 기능이 상실되고 세포, 조직, 기관의 구조·기능적 장애가 유발된다. 이러한 장애가 혈관에 누적되면 죽상동맥경화증이 야기되고 최종에는 심장이나 뇌혈관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관상동맥질환 또는 뇌졸중으로 이어진다.

학계는 당뇨병 치료의 1차타깃을 혈당조절로 잡고 있지만, 혈당조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혈관합병증 위험을 줄이는 데 있다. 혈당을 정상화시키면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대혈관합병증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혈당 - 죽상동맥경화증 -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초기단계를 사전에 차단하는 혈당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혈당조절 = 혈관합병증 예방’ 공식의 임상적용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혈당조절 = 혈관합병증 예방 !
이처럼 고혈당은 심혈관질환의 주요 위험인자이자 치료타깃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일련의 연구들은 혈당조절과 관련해 미세혈관합병증과 달리 대혈관합병증 예방효과에 있어서는 일관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항당뇨병제 임상연구에서 유의한 혈당강하 효과가 보고됐지만, 혈당이라는 지표(marker)의 개선이 궁극적인 임상결과(clinical outcome)를 막는 쪽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혈당조절을 통해 미세혈관은 물론 대혈관합병증까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단서조항이 있다. 제2형 당뇨병 진단 초기에 집중 혈당조절에 임해야 하며, 심혈관 임상혜택을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속전속결 vs 만시지탄
두 명의 제2형 당뇨병 사례를 보자. 한 환자는 당뇨병 진단시점부터 고혈당을 적극·성공적으로 조절하다가 시일이 흘러 순응도 문제로 혈당조절을 게을리했다. 또 다른 환자는 초기에 적극 치료하지 못하다 표적장기손상 등 이상징후가 나타난 후부터 집중적으로 혈당을 조절했다.

속전속결(速戰速決) 대 만시지탄(晩時之嘆)으로 비유되는 두 환자의 혈관합병증 예후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엄격히 말하자면 모두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고혈당 환자의 혈관합병증 예방을 위해서는 신속하고 지속적인 혈당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환자는 당뇨병 이환 후 어느 한 시점에서 혈당조절이 이뤄졌을뿐 전반적으로 일관된 관리는 없었다. 임상현장에서 이러한 환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두 사례 중 궁극적인 예후개선을 꼽자면 초기에 혈당을 집중조절한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혈당조절에 적극 임했다 해도 언제였느냐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이에 따라 장기적인 혈관합병증 예방혜택이 달라질 수 있다.

Legacy effects
당뇨병 환자에서 초기의 집중 혈당관리가 장기적으로 혈관합병증 개선을 담보한다는 것은 일련의 임상연구를 통해 보고돼 왔다. 학계는 이를 혈당조절의 ‘legacy effects’ 개념으로 설명한다. 대사기억(metabolic memory)이라고도 하는데, 고혈당 발생 시 발현되는 일련의 체내 세포단백질 이상반응이 기억으로 고착돼 향후 합병증 이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대사기억 현상은 고혈당 초기에 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당 스트레스 신호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세포단백질의 비효소의존성당산화(non-enzymatic glycation of cellular proteins)와 과도한 활성산소종(cellular reactive oxygen)에 의해 대사기억이 촉진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일단 대사기억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혈당이 정상적으로 조절된다 해도 폐해를 돌이키기 어렵다. 대사기억은 고혈당 노출로 인한 합병증 위험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사기억이 시작되면, 차후에라도 적극적인 혈당조절을 통해 진행을 멈추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로 당뇨병 이환기간이 오래됐다는 것은 죽상동맥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이 시점에서 혈당조절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단기간에 상황을 역전시키기가 힘들다. 역으로 초기의 집중 혈당조절을 통해 대사기억을 차단하거나 늦출 경우 당뇨병 합병증 역시 지연이나 예방이 가능하다.

초기 집중조절…장기적 임상혜택
대사기억은 아직 명확한 기전이 입증되지 않은 가설 단계지만, DCCT와 EDIC 연구를 통해 처음 제기됐으며 UKPDS와 UKPDS-10 연구를 거치면서 재차 그 가능성을 검증받았다.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UKPDS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초기 집중 혈당조절을 통해 10년에서 더 나아가 20년까지 혈관합병증 위험을 예방 또는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여기에 VADT와 ADVANCE 연구도 10년을 넘는 장기관찰을 통해 초기 집중치료의 임상혜택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신규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조기에 성공적으로 조절했을 경우, 혈당조절 효과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궁극적인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견해를 전했다.

항당뇨병제 = 심혈관합병증 예방?
UKPDS, ADVANCE, VADT 연구 등을 거치면서 ‘혈당치료 = 혈관합병증 예방’의 공식은 정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혈당조절의 주역인 항당뇨병제를 대입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항당뇨병제 치료 = 심혈관합병증 예방’의 가설을 세울 수 있느냐의 질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당뇨병제 치료의 심혈관합병증 위험감소 혜택을 시사한 연구는 UKPDS와 PROactive 정도에 불과했다. 이 또한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1차 종료점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어서, 명확한 결론을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이 로시글리타존 파동 이후, 신규 항당뇨병제들은 자신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규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았다.

혈당조절 + 심혈관보호효과
하지만 최근 들어 특정 계열의 항당뇨병제들이 심혈관 안전성을 넘어서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규명하면서 ‘항당뇨병제 치료 = 심혈관질환 예방’의 공식도 공인될 전망이다. 이렇듯 항당뇨병제들이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새롭게 보고하는 데는 혈당조절 효과를 넘어선 부가적 혜택 또는 다면발현효과(pleiotropic effects)로 대변되는 심혈관 보호효과가 역할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까지 혈당조절에서 더 나아가 심혈관사건 예방효과를 입증받은 혈당강하제 계열은 메트포르민, SGLT-2 억제제, GLP-1 수용체 작용제, 티아졸리딘디온계 등이다. 이들 계열의 특징은 강력한 혈당조절 효과와 함께 체중, 지질, 혈압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더 조절할 수 있는 부가적 혜택, 다면발현효과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메트포르민은 체중과 지질, 티아졸리딘디온계는 혈압·지질, 인크레틴 기반요법은 체중과 지질, SGLT-2 억제제는 혈압·체중·지질 측면에서 잠재적인 부가혜택을 보고해 왔다.

엠파글리플로진 = 심혈관사건 예방
항당뇨병제의 심혈관 임상혜택을 1차 종료점으로 명확히 검증한 첫 사례가 SGLT-2 억제제 엠파글리플로진의 EMPA-REG OUTCOME 연구다. 심혈관질환 병력의 고위험군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3.1년 치료·관찰결과, 엠파글리플로진은 위약군 대비 심혈관사건 복합빈도, 심혈관 원인 사망률, 전체 사망률, 심부전 입원율을 유의하게 줄였다.

전문가들은 3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항당뇨병제 치료의 심혈관 임상혜택이 확인된 것에 주목했다. 죽상동맥경화증이 있는 당뇨병 환자에서 단지 3년의 혈당강하제 치료로 심혈관 임상혜택을 확보한다는 것은 혈당조절만으로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SGLT-2 억제제에 내재된 혈당강하 이외의 혈압·체중·체액감소 효과가 심혈관사건 예방을 견인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제 내분비대사질환 학계에는 △ 혈당조절 = 혈관합병증 예방 △ 항당뇨병제 = 심혈관합병증 예방에 더해 △엠파글리플로진 = 심혈관질환 예방이라는 공식이 새롭게 자리했다. 엠파글리플로진은 EMPA-REG OUTCOME 연구를 통해 ‘항당뇨병제 = 심혈관합병증 예방’ 공식의 성립을 처음으로 선포했고, ‘혈당조절 = 혈관합병증 예방’이라는 공식에도 마지막 승인도장을 찍었다.

GLP-1 수용체 작용제
GLP-1 수용체 작용제는 탁월한 체중감소 측면에서 부가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일련의 연구에서 3~4kg의 체중감소가 관찰된다. 리라글루타이드는 이러한 다면발현효과를 응용해 비만치료제(삭센다)로 개발된 바 있다. 리라글루타이드는 LEADER 연구에서 위약 대비 심혈관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증, 비치명적 뇌졸중 복합빈도(3P-MACE)를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SUSTAIN-6 연구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가 위약 대비 심혈관사건 발생률을 26%가량 더 낮췄다(P＜0.001). 아울러 심혈관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증, 비치명적 뇌졸중, 재관류술, 불안정형 협심증, 심부전 등을 포함한 보다 확장된 복합 심혈관질환 발생률도 상대위험도가 26% 줄었다(12.1% vs 16.0%, P=0.002).

티아졸리딘디온
티아졸리딘디온계 경구혈당강하제 피오글리타존은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는 기전으로 심혈관질환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혈관질환 병력의 제2형 당뇨병 환자(5238명)를 대상으로 한 PROactive 연구에서 피오글리타존은 체중증가를 제외하고 혈압(3mmHg ↓), 중성지방(13.3%↓), HDL 콜레스테롤(8.9%↑) 등 심혈관 위험인자를 개선했다.

최종적으로 피오글리타존군에서는 위약군에 비해 사망률·심근경색증·뇌졸중 복합빈도가 16% 유의하게 감소했다(hazard ratio 0.84, P=0.027). 비당뇨병 상태인 인슐린 저항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 IRIS 연구에서는 5년시점 피오글리타존군의 뇌졸중 및 심근경색증 상대위험도가 위약군 대비 24% 낮았다(hazard ratio 0.76, 95% CI 0.62-0.93).

DPP-4 억제제
DPP-4 억제제는 혈당 이외에도 여러 가지 심혈관 위험인자의 개선에 기여한다. 체중에 무영향 또는 감소, 혈압강하, 식후 지방혈증 개선, 염증마커 개선, 산화스트레스 감소, 내피세포기능 개선 등에 영향을 미친다. 또 DPP-4 억제제의 2·3상 임상시험에 대한 사후분석에서 잠재적인 심혈관 보호효과가 발휘돼 주요 심혈관사건 위험을 낮추는 경향이 보고됐다.

총 17개의 연구들을 종합분석한 결과, 기저시점과 종료시점 지질수치의 평균차이가 대조군(위약, 여타 약물)에 비해 DPP-4 억제제 치료군에서 유의하게 높았다. 전반적으로는 DPP-4 억제제의 총콜레스테롤 감소효과가 위약과 피오글리타존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우수했다. 현재 DPP-4 억제제의 심혈관 아웃컴을 검증하기 위한 CAROLINA 연구가 진행 중이라 궁극적인 심혈관 임상혜택은 더 지켜봐야 한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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