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고혈압학회와 유럽심장학회(ESC)는 가이드라인에서 혈압측정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서 수은혈압계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전제하고 있다.

수은혈압계가 임상현장에서 퇴출된 배경에는 수은이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국제사회의 합의가 모인데 있다. 2013년 미나마타협약을 통해 50개 이상의 국가가 수은 및 수은 포함 제품으로부터 환경 및 보건을 보호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환경 및 사회에 확인된 수은 배출을 관리하고 나아가서 수은 포함 제품을 퇴출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은혈압계는 대표적인 수은 포함 제품으로 꼽혀 2020년부터 퇴출(부분적으로 2030년까지 사용)될 예정이다.

Fact Sheet

수은이 인체에 미치는 영항에 대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리한 바 있다. 올해 3월 발표한 Fact Sheet에서는 수은이 지구표층에 자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화산활동, 풍화작용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인위적 활동의 결과물로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석탄을 활용한 화력발전, 일상생활의 난방, 요리, 쓰레기 소각, 수은·금·기타 금속 채굴 등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배출되다 보니 원소 또는 금속, 일상생활 또는 직업적 환경에서 노출될 수 있는 무기물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특히 메틸수은은 생선류나 어패류 표면에 축적되기 때문에 생선과 갑각류 섭취를 통해서 노출된다. 또 원소상태로 기화된 수은은 특정 직업환경에서 노출되는 비중이 높다.

건강에 대한 수은의 영향

수은이 인체에 미치는 독성의 정도와 영향범위는 신경, 소화기, 면역시스템, 폐, 피부, 신장, 안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은의 유해성을 결정하는 인자로는 수은의 형태, 용량, 노출된 환자의 연령 또는 성장 단계, 노출 기간, 노출 루트(흡입, 소화 혹은 피부접촉)가 있다.

위험인자들을 고려했을 때 수은에 대한 민감도가 가장 높은 대상으로 태아와 만성노출 인구가 꼽혔다. 태아는 수은으로 인해 성장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태아는 자궁 내에서 모체가 메틸수은에 노출된 생선류 및 갑각류를 섭취할 경우 노출될 수 있다. 메틸수은의 1차적인 영향은 신경학적 성장장애다. 이로 인해 인지사고, 기억력, 주의력, 언어, 운동 및 시각공간 인식 등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브라질, 캐나다, 중국, 콜롬비아, 그린란드의 어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가정의 소아 1000명당 1.5~17명에서 인지기능장애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높은 수준의 수은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그룹은 수은으로 인한 인체의 유해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932~1968년 일본 미나마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세트산 제조공장에서 배출한 고농도 메틸수은이 미나마타만에 버려졌고 생선 및 갑각류가 고농도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5만명여에서 2000례 이상의 미나마타병이 확인됐다. 여기에는 뇌손상, 마비, 감렬성 언어, 섬망 등 중증 사례도 다수 포함됐다.

형태에 따른 수은의 영향

원소형태의 수은 및 메틸수은은 중추 및 말초신경계에 독성 영향을 미친다. 기체형태의 수은은 신경계, 소화기, 면역계, 폐, 신장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수은이 포함된 유기물은 피부, 안구, 소화기관을 부식시킬 수 있고, 소화됐을 경우 신장독성도 유발할 수 있다.

또 수은의 흡입, 소화, 피부노출 이후 신경 및 행동장애도 관찰된 바 있다. 경련, 불면증, 기억소실, 신경근체육영향, 두통, 인지기능 및 운동기능 장애 등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신장독성은 단백뇨부터 신장부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보고됐다.

수은 포함 제품의 폐기

인체에 대한 수은의 폭넓은 유해성을 고려할 때 수은의 생산을 막아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자연적인 변화와 함께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은의 양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석탄을 활용한 화력발전 및 난방시스템의 대체, 수은채굴 및 금광채굴에 대한 수은사용금지 등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수은 포함 제품의 폐기 역시 동일한 수준에서 필요한 수순으로 받아들여 진다.

일상생활에서 건전지, 전기장비의 스위치 및 계전기, 램프(일부 전구 포함), 피부 미백제품 및 기타 화장품, 의약품 등에 수은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수은포함 혈압계와 온도계가 대표적인 제품으로 지목되고 있다.

치과의 아말감 역시 퇴출예정 제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 회의(expert consultation)는 세계적으로 아말감을 근시일 안에 사용중지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공중보건은 물론 치과건강 영역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환발생 예방과 아말감의 대체제 개발, 비용 대비 효과적인 대체제 개발, 치과 전문가 교육, 대중의 인식개선 등이 선결과제로 꼽혔다.

한편 에틸수은의 일종인 티오메르살(thiomersal)은 일부 백신 및 의약품의 보존을 위해 극소량이 사용되고 있다. 에틸수은은 메틸수은과 다르게 체내에서 빠르게 파괴되고 축적되지 않는다. WHO는 “10년 이상 백신보존을 위한 티오메르살 사용과 관련된 학술적 근거들을 검토한 결과 건강에 위험을 미치는 티오메르살의 용량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고 정리했다.

국가적 차원의 행동 필요

WHO는 2015년 수은 혈압계와 온도계의 퇴출절차에 대한 가이드도 발표했다. 궁극적으로 국가 차원의 움직임과 함께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제품을 폐기하는 방향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한 과제도 제시했다.

초기단계의 과제는 수은혈압계와 온도계를 대체하는 문제다. 비수은 기기의 적용 가능성과 비용, 관련 기관의 예산, 청소 및 청결유지의 가능성, 개인 보호장비, 직원 수련 등의 과정도 단기~장기계획으로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WHO도 이 부분을 감안해 “수은 포함 의료기기의 사용에 대해 일괄 중단 혹은 점진적 대체를 결정해야 한다”며 선택의 폭을 열어뒀다. 미나마타협약에서도 수은 포함 의료기기의 즉각적 생산 또는 수입 중단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단 수은 및 비수은 기기를 병용하는 방식은 의료계 종사자들이 비수은 기기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식개선도 선결과제로 제시했다. 기기의 파손을 사용중단(end-of-life)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준비과정 없는 의료기기 교체로 인해 수은이 유출될 위험도 있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 차원에서 사회 내에서 수은 포함 제품의 퇴출 가능성을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WHO는 “수은혈압계의 대체는 수은포함 제품을 비수은 제품으로 전환하는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임세형 기자  shlim@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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