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위’ 정신건강질환, 우울증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는 미국정신과학회(APA)의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 5판(DSM-5)의 진단분류에 따라 17개 정신건강질환을 평가했는데, 단일질환으로는 특정 공포증을 제외하고 주요우울장애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질환에서 우울증의 위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울증은 주요 정신건강질환으로 사회적·의학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자살 위험과의 연관성이 주목받으면서 조기진단 및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질환으로 제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임상현장에 새로운 과제가 등장했다. 혼재성(mixed feature) 우울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혼재성 우울증

혼재성 우울증은 말그대로 주요우울장애 양상과 함께 조증, 경조증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DSM-5에서는 주요우울장애의 혼재성 양상에 대해 정리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주요우울장애 진단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조증 도는 경조증 증상이 동반될 경우로 정의했다. 혹은 증후군성 조증과 불충분한 우울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도 혼재성 양상에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단일성 우울증, 순수 조증과 달리 독립적인 질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DSM-5에서는 혼재성 우울증 진단의 특이도를 높이기 위해 분노지수, 주의 산만성, 정신운동초조, 불면증 등 중복된 증상은 배제하고 평가하도록 했다.

▲패러다임 전환

DSM-5에서 혼재성 우울증을 다루고 있지만 이에 대한 치료전략이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았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문가들의 합의를 모은 가이드라인(CNS Spectr. 2017)이 발표됐다.
가이드라인 주요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Stephen M. Stahl 교수는 “임상현장에서 주요우울장애 성인환자의 3분의 1 이상, 소아에서는 절반 이상이 조증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관련 치료전략이 구축된 적은 없었다”며 가이드라인 발표의 배경을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기분장애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모은 컨센서스(consensus)다. Stahl 교수는 “임상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가운데 수십년간 누적된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권고사항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혼재성 우울증 진단 및 치료의 핵심은 임상현장의 전문가들이 혼재성 우울증을 적절하게 발견하는 것이고, 혼재성 양상에 맞는 치료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Stahl 교수가 말하는 1차 치료전략은 항우울제가 아닌 항정신병약물이다. 그는 “기존의 전형적인 우울증 치료전략은 1차적으로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것이지만, 혼재성 우울증은 진행질환, 임상적 아웃컴 등이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항우울제가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보고에서는 항우울제가 오히려 조증을 유발시키고 나아가서는 자살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별부터 명확하게

1차 치료전략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에서는 우울증 환자의 조증 또는 경조증 동반 여부를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에서도 조증·경조증 관련 증상이 동반되는지를 확인하고 치료전략을 결정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DSM-5에서 제시한 혼재성 우울증 증상 외 고려해야할 증상들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동반질환, 다른 상태로 인해 나타나는 △과민성 △불안 △주의산만 △정신운동격정 △격정적 사고 △초기 및 중기 불면증 △우유부단함 △분노 △말 많아짐 △감정적 유연성/민감성 △내부 긴장감 △심사숙고 △충동성 △위험한 행동 등도 평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혼재성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는 인자들도 정리했다. 우울증 환자의 양극성장애 가족력을 비롯해 △자살시도 병력 △항우울제 유발 조증 △젊은 연령대 증상 발현 △나쁜 질환 진행 예후 △중증 우울증 △항우울제에 대한 저항성 △여성 △불안장애 동반 △물질남용 동반 △충동조절장애 동반일 경우 혼재성 우울증 위험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항정신병약물부터 고려

혼재성 우울증에 항우울제 단독요법은 권고하지 않았다. 1차 치료전략에서 단독요법으로는 루사리돈, 아세나핀, 퀘티아핀, 아리피프라졸, 지프라시돈을 권고했다.

2차 치료전략의 단독요법은 라모트리진, 발프로에이트, 리튬, 카리프라진, 올란자핀을 권고했고, 병용요법으로 △리튬, 라모트리진, 발프로에이트 + 비정형항정신병약물 △리튬 + 발프로에이트 △리튬 또는 발프로에이트 + 라모트리진 △올란자핀 + 플루옥세틴을 꼽았다.
3차 치료약물에서 단독요법은 카바마제핀만 권고했고, 병용요법으로는 △리튬 + 카바마제핀 △리튬 + 프라미페졸을 제시했다.

기타 전략으로는 △리튬 또는 라모트리진 또는 발프로레이트 또는 비정형항정신병약물 + 부프로피온 또는 SSRI 또는 MAOI △활성형 모다피닐, 아르모다피닐, 프라미페졸 추가전략 △엽산, 이노시톨, 케타민, N-아세틸시스테인, 오메가-3 지방산, 라멜테온, 세레콕시브 추가전략을 꼽았다.

한편 카바마제핀 + 올란자핀 또는 리스페리돈 전략은 적용해서는 안될 전략으로 제시했다.

임세형 기자  shlim@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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