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의 주요 조절자이자 고혈압의 중요 타깃이 되는 RAAS

혈압과 관련해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호르몬 시스템을 고르라고 하면 당연 레닌-안지오텐신 알도스테론계(renin angiotensin aldosterone system, RAAS)이다. RAAS는 전신에 작용해 전해질 및 체액량을 조절함으로써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고 혈압을 조절하지만 심장, 신장, 뇌 및 혈관 등 다양한 인체 조직에도 분포한다.

레닌(renin)에 의해 안지오텐시노겐이 안지오텐신 I이 되고, 이어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ACE)가 안지오텐신  I을 안지오텐신 II로 전환시킨다. 안지오텐신 II는 안지오텐신 II 제1형 수용체(angiotensin II type 1 receptor, AT1R)를 통해 혈관수축, 세포증식 및 체액증가 효과 등 다양한 생체리듬조절 기능을 하고, 안지오텐신 II 제2형 수용체(angiotensin II type 2 receptor, AT2R)를 통해  AT1R에 길항작용으로 AT1R에 의한 효과를 억제한다.

안지오텐신 II는 심혈관계에 직접 작용해 혈관내 염증반응과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죽상동맥경화증을 촉진하고, 심비대 및 심부전의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작용 때문에 RAAS 억제제는 혈압강하 이외에도 심혈관 및 다른 표적장기 보호효과가 예상되고 실제 심근경색증, 심부전, 관상동맥질환, 당뇨병성 신증 및 만성 콩팥병 등에서 우수한 효과가 증명돼 현재 특별한 금기가 없는 한 주요 고혈압 1차약제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ACE2라는 효소에 의해 안지오텐신 I은 안지오텐신(1-9)으로, 안지오텐신 II는 안지오텐신(1-7)으로 전환되는데 안지오텐신(1-7)은 Mas 수용체에 결합해 혈관확장, 이뇨작용 및 세포증식 억제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림). 항고혈압제 중에서 베타차단제는 RAAS에 직접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닌 분비를 억제해 RAAS를 억제한다.

RAAS 억제제의 종류와 역사

고혈압에서 RAAS의 역할이 밝혀진 후 RAAS 억제제로 처음 개발된 것이 1970년대 말에 ACE 억제제인 캡토프릴(captopril)이다. 이후 1980년대부터 ACE 억제제 투여 후 위약 대비 심근경색증 발생억제, 심부전 사망감소, 만성 콩팥병 진행억제, 당뇨병 이환감소 등 다양한 임상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항고혈압제의 주축이 됐다.

하지만 ACE 억제제는 브라디키닌(bradykinin)의 분해를 억제해 브라디키닌이 증가하고 혈관부종, 기침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문제가 됐다. 1995년에 AT1R 차단제 (angiotensin receptor blocker, ARB)인 로살탄(losartan)이 개발됐으며, ACE 억제제에 비해 보다 선택적·특이적으로 AT1R에 작용하므로 브라디키닌에 의한 기침 등의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고 다양한 임상효과에서는 ACE 억제제와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보고됐다. ARB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에서 흔하게 보고되는 기침이 적게 나타나면서 ACE 억제제보다는 ARB가 고혈압 환자의 1차치료제로 급부상하게 됐다.

한편 레닌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직접 레닌을 억제하는 알리스키렌(aliskiren)이 2003년에 개발됐고 이후 한 두 가지가 더 선을 보였으나 국내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RAAS의 마지막 단계인 알도스테론의 작용을 억제하는 알도스테론 차단제는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one) 및 에플레레논(eplerenone)이 있다. 고혈압 환자 중에서도 이뇨제를 포함한 3제요법에 조절되지 않는 소위 저항성 고혈압에서 알도스테론 차단제가 추천된다. 알도스테론 차단제는 다른 이뇨제와는 달리 심부전 환자에서 사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증명돼 주요 심부전 약물로도 많이 사용된다.

RAAS 억제제 사용 주의사항

 양쪽 콩팥동맥이 모두 협착이 있는 경우에 ACE 억제제 또는 ARB를 투여하면 심한 저혈압 및 콩팥기능 악화가 나타날 수 있다. ACE 억제제 또는 ARB를 투여하고 처음 2개월 내에 혈청 크레아티닌이 상승할 수 있으나 처음 수치에 비해 30% 이내로 상승하고 혈중 칼륨이 5.5mEq/L 이상 증가하지 않으면 약투여를 중단할 필요는 없으며, 추가적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콩팥기능과 전해질을 모니터하는 것이 추천된다.

특히 만성 콩팥병 환자처럼 혈청 크레아티닌이 3.0mg/dL 이상인 경우에는 ACE 억제제 또는 ARB 투여 후 고칼륨혈증에 주의해야 한다. ACE 억제제 투여 후 기침이 생겨서 복용이 어려우면 투약을 중단하고 수 일 혹은 수 주 내에 소실되므로 기다려본다.

이러한 마른 기침은 아시아인에게 더욱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여성과 비흡연자에서 더 흔하다. ARB는 기침이 드물게 나타나므로 ACE 억제제 적응이 되는 환자에서 기침이 심하면 ARB로 바꿔 처방해 볼 수 있다. ACE 억제제 또는 ARB는 태아에 기형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임신부에게는 금기이며, 임신이 예정돼 있거나 가임부에서는 투약 시 주의해야 한다.

RAAS 억제제의 병용요법

 ACE 억제제 또는 ARB와 알도스테론 길항제를 함께 복용하는 경우에 고칼륨혈증의 위험이 증가하므로 처방 1~2주 이내에 혈청 칼륨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한편 ACE 억제제와 ARB를 함께 투여할 수도 있으나 고칼륨혈증의 위험과 말기 콩팥질환, 뇌졸중 등의 심뇌혈관질환 발생이 오히려 증가하므로 병용을 피해야 한다.

 ACE 억제제/ARB는 심부전, 심근경색증 후 환자 및 일부 부정맥에서 베타차단제와 병용하는 경우가 있고, 혈압강하를 목적으로 단독요법으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에 칼슘길항제 또는 이뇨제와 병용하거나 세 약제 모두를 병용 투여하는 것이 권장된다. 시중에는 ACE 억제제/ARB와 이뇨제 혹은 칼슘길항제가 한 알에 함께 들어 있는 고정용량 복합제(fixed-dose combination 또는 single pill combination)가  나와 있어서 단독요법으로 조절되지 않거나 고위험 혹은 고혈압 2기에서 투약 시 환자의 순응도를 개선하고 조절률을 향상시킬 수 있다. ACE 억제제/ARB와 칼슘길항제, 이뇨제를 모두 사용해도 조절이 되지 않는 소위 ‘저항성 고혈압’에서는 콩팥기능과 전해질(특히 칼륨)을 모니터하면서 알도스테론 길항제인 스피로노락톤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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