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중독(addiction), 급성중독(intoxication), 남용(abuse)과 의존(dependence), 사용 장애(use disorder)

이 용어들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부정확한 용어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나기도 한다. 우선 역사적으로는 1952년 미국정신과학회(APA)가 발간한 미국 통계진단편람 1판(DSM-I)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한 세계질병분류 6판(ICD-6)이 나오기 전까지 중독 관련 질환을 포함한 정신질환 자체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기 않았다. 인류의 역사에 비해 중독 질환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뜻이다. 1952년 당시에 DSM-I에서는 알코올 의존을 ‘alcoholism(addiction)’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인격(성격) 장애의 한 가지로 치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 중독성 질환의 개념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1980년에 중독의 주요 2개념은 물질의 과다 사용에 의한 사회적 또는 법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남용’, 그리고 장기적 물질 사용에 의해 발생한 금단과 내성 등과 같은 한 개인의 생리적, 신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의존’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많은 외국에서 중독성 질환을 진단할 때에는 ICD-10판에 근거한 물질 남용 또는 물질 의존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2013년 DSM-5판이 발간되면서 남용과 의존의 분류가 갖는 논란 때문에 2가지 개념을 합친 ‘물질 사용 장애’라는 새로운 진단명이 제시됐다.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남용이 병이냐 아니냐는 논란을 의식한 결과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진상’ 또는 ‘주정’정도로 생각하는 상황이 미국에서 남용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물질’ 사용 장애에서 의미하는 ‘물질’에는 알코올, 아편, 대마, 진정, 수면제, 코카인, 카페인과 같은 정신자극제, 환각제, 담배, 휘발성 용매(본드) 등이 해당한다. 즉, 주된 원인 물질이 알코올이라면 그 환자는 알코올 남용, 알코올 의존으로 진단한다.

DSM-5판에서는 물질 중독에 도박과 같은 행위중독을 포함해 중독성 질환 전체를 일컬을 때에는 ‘물질 관련 그리고 중독성 질환’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WHO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해 곧 발간될 ICD-11판에 물질 중독과 함께 도박, 인터넷, 온라인 게임 등의 행위 중독이 포함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ICD-10 체계를 따른다면 ‘남용’과 ‘의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지만, 독자의 가독성과 APA의 의견대로 물질중독과 행위중독을 아우른다는 의미를 포함해 ‘중독’이란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러나 여기서의 중독(addiction)과 급성 중독(intoxication)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중독은 수 년 이상의 만성적인 과정이고, 급성 중독은 글자 그대로, 술을 마시고 약 20여분 후에 알코올이 흡수돼 뇌에 도달하면 술기운이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독의 임상적 의미 

요약하면 장기적인 물질 사용으로 인해 갈망, 금단, 내성 등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12개월 이상 기간 동안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장애가 유발됐지만,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용을 하게 되고, 중단하고 싶어도 중단할 수 없어서 더 이상 의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물질 사용 장애의 진단 내릴 수 있다.

의도보다 더 많은 양을 사용하게 되고, 그만두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통제력의 상실은 알코올, 마약, 도박 등의 장기간의 사용으로 의해 뇌에 기능적 또는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런 변화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반복된 사용이 선행돼야 한다. 알코올, 진정제, 본드 등의 유기 용매를 수년 이상 장기간 사용하면 결국 ‘치매’가 유발되는 것도 결국 중독은 뇌의 병이라는 증거다.

그러나 술만 많이 마신다고 다 의존 환자가 아니다. 2016년 조사에 의하면 약 5000만 명의 국민 중에 알코올 의존 환자는 4.4%인 약 16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술이나 담배를 피운다고, 명절에 화투 놀이를 했다고, 여가 시간에 인터넷, 모바일 게임을 했다고 모두 중독자가 아니며 많은 연구를 통해 구성된 엄격한 진단 기준에 부합되는 경우만을 의학적으로 중독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0명 중에 6명만이 치료를 받는다는 현실이 아직도 중독성 질환에 대한 높은 사회적, 심리적 장벽을 보여준다. 사실 중독 환자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증상은 '병식부족'이다. 자신 스스로 중독을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악화되어 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사회적 고립,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독의 개인, 사회-경제적 부담, 자살

알코올, 니코틴(담배), 마약, 도박이라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중독으로 인해 각종 신체질환과 정신질환의 합병증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알코올과 담배는 여러 암의 원인이나 위험요인으로 지적되는 단골손님들이다. 이를 위한 직접적 의료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다.

사회적으로는 음주로 인한 음주운전, 성범죄, 가정 폭력, 아동학대, 주취 폭력과 같은 범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중독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합병증으로 인하여 생산력 저하 등의 간접적인 손실도 어마어마하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00년에 14조 9352억에서 2009년 23조 4430억 원으로 약 10조원의 증가를 보고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중독의 폐해는 사망 또는 자살과의 밀접한 연관성이다. 2015년에 통계청 보고에 의하면 알코올과 관련된 사망자는 하루 평균 13명이며 인구 10만 명당 9.3명으로, 만성하기도 질환, 간질환, 운수사고, 고혈압성 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5위를 차지했다.

한편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 흡연자 등에서 자살 사고나 시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 2011~2013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비음주자에 비해 고위험 음주자의 자살사망 위험도가 1.93배 높았다. 자살률과 함께 연간 음주율을 비교해보면 IMF 당시 68.4%로 상승한 이후 2005년 78.4%로 가파르게 상승해 2015년까지 74~76%대 음주율을 보이고 있어 음주와 사망 또는 자살과의 높은 연관성은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왜 이런 높은 연관성을 보일까? 의존의 기본 개념에 해당하는 ‘조절력의 상실’로 인하여 알코올이나 약물의 급성 중독 상태에서 충동적이거나 극단적일 수 있으며 특히 알코올 의존, 도박중독, 인터넷게임 중독 환자에서 우울증의 동반률이 20~50%에 달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중독 상태에서는 지나간 과거가 후회스럽고, 더 이상 현실이 즐겁지 않고, 내일도 역시 마찬가지라면 그냥 생을 마감하자는 인지왜곡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맺음말

한 번 중독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건전한 음주 및 여가 문화가 시급하다. 또한 중독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두 다리가 골절되면 의지로만 걸을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뇌가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되면 의지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단 중독되면 의학적, 사회적, 정책적인 모든 노력이 필요하다. 한 명의 의존으로 인한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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