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떨어진 불

미국 심장학계의 혁신은 우리나라 학계에도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미국이 고혈압 치료와 관련해 혁신행 기차를 출발시킴에 따라, 여기에 동승할 것이냐 아니면 독자적인 노선을 고수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이 시작된 것.

美 학계가 던진 고혈압 관련 화두에 대한 우리 학계의 최종적인 답변은 새로 발표된 ‘2018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한민국의 선택

대한고혈압학회는 미국의 발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2018년 고혈압 진료지침’을 공개했다. 2013년에 이어 5년만에 고혈압 관련 학술 권고안을 업데이트한 것으로, 그 동안 새롭게 보고된 치료혁신과 미국에서 불어온 변화의 바람을 대한민국 가이드라인에 그대로 반영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학회 측은 미국발 고혈압 혁신과 관련해, 진단기준은 상당 부분 과거의 전통을 유지·고수하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치료에 있어서는 목표혈압을 더 내리는 등 진보적 태도를 견지했다.

140/90mmHg

학회 측은 우리나라 환자의 고혈압 유병특성과 임상·관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술 권고안을 만들어냈다. 고혈압학회의 답변은 명확했다. 미국이 “이제 고혈압은 130/80mmHg 이상부터”라는 주장이었다면, 우리나라는 “고혈압은 일관되게 140/90mmHg 이상부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학회는 고혈압 진단기준과 관련해 “진료현장에서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기준혈압으로서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가 더욱 분명해진 140/90mmHg을 제시한다”며 전통적 기준에 더 힘을 실었다.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엄격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에서 약물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역치 이상의 혈압”으로 고혈압을 정의한 것이다.

고혈압 1기

즉 혈압분류 시에 △고혈압 1기를 140~159/90~99mmHg △고혈압 2기는 160/100mmHg 이상으로 정의, 140/9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타 혈압분류는 △정상혈압 120/80mmHg 미만 주의혈압 120~129/80mmHg 미만 △고혈압전단계 130~139/80~89mmHg △수축기단독고혈압 140mmHg 이상/90mmHg 미만으로 제시했다. 2013년판에서는 고혈압전단계 1기(120~129/80~84mmHg)와 고혈압전단계 2기(130~139/85~89mmHg)로 분류했던 것이 2018년판에서는 주의혈압과 고혈압전단계로 구분했다.

측정방법에 따른 고혈압 정의

이상의 고혈압 진단기준은 기존 방식으로 진료실에서 측정된 혈압값에 근거한 것으로, 혈압측정 방법에 따라 고혈압의 진단기준은 조금씩 차이를 나타낸다. 새 고혈압 진료지침에 따르면, 진료실혈압에 기반한 진단기준은 140/90mmHg 이상인 반면, 가정혈압을 적용했을 경우에는 135/85mmHg 이상일 때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할 수 있다. 24시간활동혈압의 경우에도 차이를 보이는데 일일 평균혈압은 130/80mmHg, 주간 평균혈압 135/85mmHg, 야간 평균혈압은 120/70mmHg 이상일 때 고혈압으로 진단이 가능하다. 또한 진료실에서 기존의 수은혈압계로 측정한 경우가 아니고 자동혈압계를 사용했을 때에는 135/85mmHg 이상부터 진단내릴 수 있도록 했다. 진료실 자동혈압계 측정 시에 백의효과(white-coat effects)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결정으로 보인다.

높은 질병부담률 고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이었지만, 고혈압 진단기준을 엄격하게 낮췄을 경우 환자 수의 급증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장을 고려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고혈압학회 측은 새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미국의 고혈압 진단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인인구의 32.0%였던 유병률이 50.5%로 급증한다”며 높은 질병부담률에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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