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변동성

당화혈색소(A1C), 공복혈당(FPG), 식후혈당(PPG)에 더해 혈당변동성을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타깃으로 삼아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루 중 혈당수치 변화의 폭을 의미하는 혈당변동성을 당뇨병 합병증의 또 다른 위험인자 또는 표지자(마커)로 보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루 중 평균 혈당량 또는 당화혈색소 수치가 같은 환자들 사이에서도 혈당변화의 폭이 크고 작음에 따라 당뇨병합병증 및 사망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혈당수치의 변화가 크지 않은 안정된 상태의 고혈당혈증보다 하루 중 고혈당과 저혈당을 왔다 갔다 하는 이상혈당혈증이 심혈관질환과 관련해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에서 급성 혈당변동성이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당뇨병성 혈관합병증을 유발한다는 병태생리학적 기전이 규명되기도 했다.

심혈관질환 위험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는 제2형당뇨병 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혈당변동성이 지목된 바 있다. 중국 연구팀이 영국 스코틀랜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진료실 방문 시 당화혈색소 변동성(visit-to-visit HbA1c variability)과 심혈관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변동성이 큰 환자군에서 주요심혈관사건(MACE) 위험이 2배 이상 상승했다. 게다가 당화혈색소 변동성이 큰 환자군은 미세혈관합병증 위험도 높아 주의가 요구됐다.

이 후향적 코호트 연구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된 SCI-DC(Scottish Care Information-Diabetes Collaboration)에 모집된 환자 데이터가 포함됐다. 제2형당뇨병을 진단받은 후 5회 이상 당화혈색소를 측정한 환자가 대상군이었다.

연구팀은 HVS(HbA1c variability score)를 활용해 제2형당뇨병 환자의 혈당변동성을 평가했다. HVS는 당화혈색소 측정 시 수치가 0.5%(5.5mmol/mol) 이상 변화한 횟수를 비율로 환산한 계산법이다. 이를 통해 HVS가 가장 높은 5분위수 환자군(80~100%)과 가장 낮은 5분위수 환자군(0~20%)의 10가지 평가지표 발생위험을 비교했다.

안정적 혈당조절에 방점

제2형당뇨병 환자 1만 3111명~1만 9883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HVS가 높은 환자군은 낮은 환자군보다 MACE뿐 아니라 전반적인 합병증 위험이 높았다. 구체적으로 HVS가 높은 환자군의 각 평가지표 발생위험은 △MACE 2.38배(HR 2.38, 95% CI 1.61~3.53)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2.4배(2.4, 1.72~3.33)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2.4배(2.4, 1.13~5.11) △관상동맥질환 2.63배(2.63, 1.81~3.84) △허혈성 뇌졸중 2.04배(2.04, 1.12~3.73) △심부전 3.23배(3.23, 1.76~5.9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HVS가 높은 환자군은 미세혈관합병증 중 당뇨병성 망막병증 위험이 상당히 높았다. HVS가 낮은 환자군 대비 7.4배 더 위험도가 컸다(HR 7.4, 95% CI 3.84~14.27). 이와 함께 HVS가 높은 환자군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은 HVS가 낮은 환자군보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3.07배(HR 3.7, 95% CI 2.23~4.22) △당뇨병성 족부궤양 5.24배(5.24, 2.61~10.49) △만성 신장질환 3.49배(3.49, 2.47~4.95) 더 높았다.

연구를 진행한 중국 쓰촨대학 Sheyu Li 교수는 “제2형당뇨병 환자의 당화혈색소가 자주 변하면 예후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혈당변동성을 당뇨병 환자의 예후를 악화시키는 독립적인 위험요인으로 봐야 한다”며 “임상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당화혈색소를 정상 수치로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조절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혈당증

한편 가톨릭대성빈센트병원 고승현 교수팀(내분비내과)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분석해 중증 저혈당증과 심혈관질환의 연관성을 확인, 직접적인 인과관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중증 저혈당증은 본인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저혈당 쇼크상태를 의미한다. 저혈당증이 발생하면 교감신경계 활성화, 염증반응, 혈액응고장애, 내피세포기능장애 등으로 인해 심혈관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심혈관질환 원인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중증 저혈당증이 심혈관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ACCORD, ADVANCE, VADT 등 대규모 연구에서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한 환자의 사망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으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는 못했다.

인과관계?

인과관계를 시사하려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같은 환자군을 중증 저혈당증 유발군 또는 비유발군으로 나눠 비교해야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 중증 저혈당증이 발생한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의 특성을 매칭해 전향적 관찰연구를 시행하거나, 우수한 빅데이터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행된 이번 빅데이터 분석결과에 의하면, 중증 저혈당증 빈도가 증가할수록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분석에서 심혈관질환 과거력이 있는 환자를 배제했음에도 이 같은 위험이 나타나, 중증 저혈당증이 심혈관질환의 위험인자라는 것을 뒷받침했다.

심혈관질환에서 사망위험까지

연구는 보건복지부 의료기기기술개발사업(보건의료 빅데이터 연계·활용 강화연구)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심혈관과 당뇨병 관련 국제 학술지인 Cardiovascular Diabetology에 실렸다. 연구팀은 건보공단 빅데이터에서 2009년 제2형당뇨병으로 분류된 156만 8000여명의 환자 데이터를 토대로 2007~2009년 중증 저혈당증 경험 횟수를 확인했다.

그 결과 최소 1회 이상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한 환자는 1.2%(1만 9660명)에 달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2015년 12월까지 새롭게 발병한 심근경색증, 뇌졸중, 심부전 또는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등을 조사했다.

평균 5.7년 추적관찰 결과, 중증 저혈당증 횟수가 증가할수록 심혈관질환 또는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심근경색증 위험은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하지 않은 환자(비경험군)와 비교해 △1회 경험군 1.56배 △2회 경험군 1.86배 △3회 이상 경험군 1.86배 높았다. 뇌졸중 위험은 비경험군 대비 △1회 경험군 1.54배 △2회 경험군 1.62배 △3회 이상 경험군 2.14배 더 많았다.

심부전 위험 역시 각각 △1.68배 △2.0배 △2.59배 의미 있게 높았다.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도 비경험군과 비교해 △1회 경험군 1.98배 △2회 경험군 2.39배 △3회 이상 경험군 3.28배 높아, 중증 저혈당증 횟수가 증가할수록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였다. 다만 이 같은 위험은 추적관찰 1년 이내에 가장 높았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위분석

한편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한 제2형당뇨병 환자는 비경험군보다 고령에 인슐린 사용자가 많으며 동반질환 위험도 더 높다. 즉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한 환자는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를 많이 갖고 있어, 다른 요인에 의해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역인과관계에 의한 편향(reverse causation bias)’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중증 저혈당증과 심혈관질환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확인하고자 연령, 인슐린 사용 여부, 동반질환 등에 따라 하위분석을 시행했다. 그 결과, 65세 이상의 고령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어린 30~64세 성인도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하면 심혈관질환 또는 사망 위험이 상승했다. 또 인슐린을 사용하지 않고 동반질환이 없는 환자도 중증 저혈당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사이에 일관된 결과가 나타났다.

저혈당증 고려해 혈당강하제 선택

이에 따라 제2형당뇨병 치료를 위한 혈당강하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혈당증 유발 위험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9년 대한당뇨병학회 당뇨병 진료지침에서는 저혈당증 유발 위험도를 혈당강하제 선택 시에 고려해야 할 주요요인으로 제시했다. 또 중증 저혈당증을 경험했거나 저혈당 무감지증이 있는 경우 치료약제를 재평가하고 목표혈당을 상향조정하도록 권고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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