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병태생리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이론적 배경은 고혈압의 병태생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고혈압은 RAS(레닌·안지오텐신시스템)억제제, CCB(칼슘채널차단제) 등 각각의 계열약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병태생리 루트를 통해 발생한다. 때문에 하나의 루트만을 단독으로 막거나 공략해서는 원하는 목표혈압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고혈압 치료에 있어 가장 강력한 명제 중 하나는 “한 가지 루트만 표적으로 공략하는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으로는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고혈압학회(ASH)의 보고에 따르면, 354개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을 메타분석한 결과 단일성분 항고혈압제의 평균 강압효과는 9.1/5.5mmHg에 불과했다.

베타차단제, 이뇨제,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CCB 등 계열 간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를 임상현장에 적용하면 수축기혈압이 150mmHg를 초과하는 중증 고혈압 환자의 경우 항고혈압제 단독요법으로는 목표혈압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양한 계열

이러한 이론적 배경과 임상경험을 고려해, 최근까지 병태생리학적 측면에서 고혈압 발생의 다양한 경로(physiological pathways)들이 밝혀졌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각각의 루트를 공략하는 새로운 계열의 항고혈압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즉 항고혈압제 계열의 다양화로 인해 병용요법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목표혈압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임상에 적극 반영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목표혈압에서 기인한다. 최근의 고혈압 치료동향은 △목표치 강화 △병용처방 증가라는 연결된 두 패러다임에 집중되고 있다. 첫째, 현단계에서 고혈압 치료 패러다임은 전세계적으로 목표혈압을 엄격하게 하향조정하는 쪽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지난 2017년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 이상으로 낮추면서, 고령인구를 포함한 고혈압 환자의 전반의 혈압을 130/80mmHg 미만까지 낮추도록 권고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혈압 진단기준은 140/90mmHg로 유지하면서도,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목표혈압을 130/80mmHg으로 낮추면서 강력한 혈압조절 패러다임에 호응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2018년 지침에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혈압을 130/80mmHg ‘정도’로 조절할 것을 고려한다”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2022년판에서는 “130/80mmHg ‘미만’으로 조절할 것을 고려한다”로 변경했다. 강하고 엄격한 목표혈압의 수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강압력 제고

목표혈압 강화의 근거가 된 SPRINT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항고혈압제 병용은 단일요법과 비교해 혈압강하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서로 차별화된 기전을 통해 혈압상승의 원인이 되는 다른 타깃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SH는 “일반적으로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혈압을 더 낮추는 것, 즉 유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항고혈압제를 써야 한다는 ‘The More, The, Lower’  접근법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조기적용

고혈압 치료의 또 다른 패러다임은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조기에 적용하는 쪽으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항고혈압제 병용치료의 일상적인 적용과 함께, 혈압이 160/110mmHg 이상이거나 20/10mmHg의 강압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140/90mmHg

미국의 경우는 더욱 앞서가는 경향을 보인다. ACC와 AHA가 내놓은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시작시점이 더 앞당겨진다. 양 학회는 미국 측의 고혈압 2단계(140/90mmHg) 환자, 그리고 목표혈압(130/80mmHg 미만)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했다. 이를 임상에 적용하면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약물치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

유럽심장학회(ESC)·고혈압학회(ESH)는 가이드라인에서 혈압 140/9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정의하면서, 대부분의 환자에게 이 시점부터 2제 병용요법을 권고하는 동시에 순응도를 고려해 단일제형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 적용을 우선하도록 당부했다. 즉 항고혈압제 치료를  2제 병용요법으로 시작하도록 장려하면서 가급적이면 단일제형복합제를 쓰도록 장려했다.

160/100mmHg 이상

대한고혈압학회는 2022년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혈압이 160/100mmHg 이상(2기 고혈압)이거나 목표혈압보다 20/10mmHg 이상 높은 고위험군의 경우 강압효과를 극대화하고 혈압을 빠르게 조절하기 위해 처음부터 항고혈압제를 병용투여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또한 고정용량복합제는 강압효과를 상승시키고 부작용을 줄이며, 치료 지속성을 증가시켜 심뇌혈관질환과 무증상장기손상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병용 시에 단일제형복합제의 처방에 무게를 실었다.

혈압강하력 추가

고혈압 치료에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사용하는 것은 한 가지 약물로 이루기 힘든 목표혈압의 달성, 즉 추가적인 유효성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 때문에 한 가지 루트만 공략하는 단일요법이 아닌 여러 루트를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기전의 약제를 병합한다.

ASH는 “일반적으로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증가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항고혈압제 병용 시에는 상호 다른 기전으로 인해 유효성을 보완해줄 수 있는 약제들의 조합이 우선돼야 한다.

부작용 위험 상쇄

내약성의 개선 역시 병용약물을 선택하는 데 주요 기준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약제를 늘리면 부작용 위험이 상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약제 간 상호보완 작용으로 인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추가되는 항고혈압제의 약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초치료 단일약제의 부작용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SPC로 순응도 제고

순응도는 항고혈압제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다. 같은 혈압강하력의 두 항고혈압제를 놓고도, 순응도에 따라 최종적인 유효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순응도를 놓고 본다면 두 가지 이상 항고혈압제를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단일제형복합제 또는 고정용량복합제가 선호된다. 치료를 간편화시키고 알약개수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ASH는 복합제와 이를 구성하는 개별 약물을 비교한 9개 임상시험의 메타분석 결과를 인용, “복합제를 통해 약물 순응도를 26%까지 개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근거해 한국·북미·유럽의 고혈압 가이드라인 모두 항고혈압제 병용시에 단일제형복합제를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침에서 “두 가지 이상 약제의 성분이 단일제형에 포함된 고정병용 약제는 항고혈압제의 치료 지속성을 향상시키고 단일약제의 병용요법에 비해 우월한 치료결과를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병용조합

대한고혈압학회는 진료지침을 통해 “(목표혈압 도달 실패시에) 용량을 늘리기 보다는 서로 작용이 다른 약을 소량씩 추가하면 강압효과와 치료 지속성을 동시에 높이면서 부작용은 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상호 다른 보완기전의 약제조합을 주문했다. 학회는 우선 권장되는 병용요법으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또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와 칼슘채널차단제(CCB) △ARB 또는 ACEI와 이뇨제 △CCB와 이뇨제의 조합을 꼽았다.

병용처방 현황

고혈압 치료의 새 패러다임의 이루고 있는 항고혈압제 병용처방은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대한고혈압학회의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2’을 보면, 국내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처방이 얼마나 많이 이뤄지고 있나를 엿볼 수 있다. 2제병용 팩트시트의 항고혈압제 처방패턴 변화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한 가지 약제를 처방받는 경우(1제요법)가 39.8%였던 반면, 2제 이상의 항고혈압제 처방은 60.2%로 단독치료보다 우위를 점했다. 세부적으로는 2제요법이 43.8%, 3제요법 이상이 16.4%로 두 가지 항고혈압제를 병용하는 처방이 다수를 차지했다.

병용조합 병용요법(2제병용)을 약제조합 별로 보면, RAS억제제 + CCB가 67.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RAS억제제 + 이뇨제(18.4%), RAS억제제 + 베타차단제(4.6%), CCB + 베타차단제(4.1%), CCB + 이뇨제(2.4%) 등이 순위를 지켰다. 3제요법에서는 RAS억제제 + CCB  + 이뇨제(58.2%) 조합이, 4제요법은 RAS억제제 + CCB + 이뇨제 + 베타차단제(76.3%)가 가장 많은 처방기록을 갖고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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